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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계속할수도, 빠져나올수도 없다… '중동전쟁 늪'에 빠진 美

Jacob, Kim 2019. 1. 6. 05:14







2019년 1월 5일자





9·11테러 이후 20년 가까이 천문학적 비용·희생에도 성과 없어
"철군·무개입" →치안불안과 테러세력 키워→증파 반복 악순환





[기사 전문]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시리아 등 중동에서 벌여온 전쟁이 '계속해도 패배하고 빠져나와도 패배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늪이 되고 있다.

미국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20년 가까이 중동 각국에서 전쟁을 벌였지만 천문학적 전비(戰費)와 인명을 소모하면서도 테러 세력을 전멸시키거나 지역을 안정시킨다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
반면 전쟁에 지쳐 발을 빼려 하면 신종 테러 세력이나 이란·러시아·중국 같은 적국들이 득세하고 미국이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난이 따르는 양상이 반복돼 왔다.







최근 시리아 철군 문제가 이 딜레마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시리아 주둔 미군 2000명 전원 철수를 발표하면서 기한을 '30일 이내'라고 못 박았는데, 곧 미 정부 안팎에서 '60~90일'로 수정되더니 새해 들어선 '120일'이 유력하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미군이 전멸당하지 않고 철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이 120일"이란 분석이 나왔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 시각) 각료회의에서 "시리아는 모래와 죽음만 있는 곳"이라면서도 "우리는 현명하게 철수한다. 내일 당장 나간다고 한 적 없다"며 일정이 더 연장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워싱턴포스트는 3일 사설에서 "철군에 대한 관료·전문가의 반발이 크자 트럼프가 조용히 마음을 접은 것 아닌가"라고 했다.

미국이 17년째 빠져나오지 못한 아프가니스탄은 대표적인 '수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철군과 함께 아프간 주둔 미군도 현재 1만4000명에서 7000명으로 절반 줄이라고 명했지만 달성 여부는 불투명하다. 1990년대 아프간을 통치했던 탈레반은 미국 철군 즉시 다시 집권할 기반을 유지하고 있으며, 아프간 국민은 다시 이슬람 원리주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된다. 미국 군·정보기관 출신들은 "미군 몇 명이 아프간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만들 순 없다. 그러나 철군하면 9·11에 버금가는 미국 안보 위협 사태가 또 올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은 "미국이 일단 깨부수면 책임져야 한다(If you break it, you own it)"고 했다.

왜일까. 2001년 조지 W 부시 정부는 알카에다를 숨겨준 아프간을 침공해 한 달 만에 탈레반 정권의 항복을 받아냈지만, 기나긴 무장 투쟁이 시작됐다. 탈레반의 산악 지대에 특화된 게릴라전, 마약 재배·유통 세력에 장악된 경제, 미국이 후원하는 아프간 정부와 군의 부패, 뿌리 깊은 종파·인종별 분쟁, 대테러전 동맹 파키스탄의 은밀한 테러 지원 앞에 미군은 번번이 길을 잃었다.

미군 5000여 명을 유지하고 있는 이라크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를 대량살상무기 은닉을 이유로 침공, 후세인 정권을 두 달 만에 몰아냈지만 알카에다와 아류 세력의 반격이 중동 전역과 아프리카, 유럽까지 번졌다. 미국은 현재 '테러 1번지' 이라크 철군을 포기한 상태다.

전쟁 종식을 내건 버락 오바마 민주당 정부조차 중동 철군은커녕 병력을 4~5배 증파해야 했고, 2011년에야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 사살 성과를 내세워 철군을 시작했다. 중동의 악몽에 신물 난 오바마는 이 시기 시리아 내전에서 정부군이 화학무기로 민간인을 살상하는데도 끝내 군사 개입을 하지 않았다.

오바마의 중동 철군·무개입 원칙은 곧바로 각국 치안 공백과 함께 IS(이슬람국가)라는 신종 테러 세력을 낳았다. IS가 2014년부터 이라크와 시리아를 근거지로 아프리카·유럽·아시아까지 세력을 뻗치자 오바마는 어쩔 수 없이 중동전을 재개해야 했다. 현재 미군이 전투 수행 중인 세계 8개 지역이 모두 IS 소탕 작전과 관련 있다. 미 안보 전문지 내셔널인터레스트는 "IS의 창궐이 중동 각국의 난민을 낳고, 유럽의 반(反)난민 정서에 기반한 극우세력의 득세와 민주주의 파괴로 이어지면서 미국 주도의 자유진영 붕괴라는 도미노 효과를 낳고 있다"면서 미국의 섣부른 철군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분석했다.

중동 정책에 대한 트럼프의 잦은 입장 변경은 이런 미국 내 혼란을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그는 2012년 대선 출마 준비 당시 여론에 따라 "아프간·이라크에서 철군하라"고 주장하다가, 2014년 IS가 창궐하자 "오바마의 무책임한 철군 탓"이라고 비난했다. 2016년 대선에선 다시 "미국에 이익 안 되는 중동 전쟁을 모두 끝내고 미 남부 국경 안보에 재배치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취임 후 2017년엔 아프간 탈레반이 평화 협상에 응하지 않자 5000명을 증파하기도 했다.





[정시행 기자 polyg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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