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1945/독일-폴란드 분리선

◆[조선일보] 러시아, 日에 “쿠릴열도, 북방영토라 부르지 마”…영토분쟁 평행선

Jacob, Kim 2019. 1. 1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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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5일자





[기사 전문]





러시아와 일본이 14일(현지 시각)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영토 분쟁 지역인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 귀속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일본에 "영토분쟁 지역인 쿠릴열도는 러시아령"이라고 강하게 주장해 양측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입장차만 확인했다.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모스크바에서 장관급 러·일 평화협정 협상을 진행했다. 지난해 1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 둘을 협상 책임자로 지명한 후 열린 첫 회담이다.




그러나 양측의 입장은 좁혀지지 않았다. 러시아와 일본 모두 쿠릴열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입장만 반복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회담이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쿠릴열도 주권은 러시아에 있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이를 일본이 인정하지 않으면 논의가 진전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일본법에 현재 러시아령인 쿠릴열도가 일본식 명칭인 ‘북방영토’로 규정돼 있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도 압박했다. 쿠릴열도가 영토 분쟁 지역이 아니며 명확히 러시아령이라는 입장을 재차 강조한 셈이다.

그러면서 라브로프 장관은 소·일(蘇日)공동선언과 관련 "시대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일공동선언이란 1956년 옛 소련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합의한 것으로 ‘평화조약 체결 후 4개섬 중 시코탄과 하보마이를 일본에 인도한다’는 내용이 있다. 일본은 4개 섬 모두 반환해달라고 하던 것에서 전략을 바꿔 우선 시코탄, 하보마이 등 2개 섬이라도 돌려달라고 러시아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평화협정을 우선 체결하자는 입장이다.

이에 고노 외무상은 협상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도 일본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일본의 주장을 명확히 전달했다. (서로 주장이) 맞지 않는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 계속 협상을 하면서 맞는 부분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했다. 외무성 관계자는 회담 후 "일본의 법적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일본도 쿠릴열도를 계속 북방영토로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고노 외무상은 이날 회담 뒤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 간의 러·일 정상회담을 오는 22일 모스크바에서 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일본과 러시아는 정상회담 전까지 쿠릴열도 문제와 평화협정 문제를 조율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러·일 간 평화협정 논의는 지난해 9월 푸틴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어떤 전제조건도 없이 평화조약을 맺자"고 ‘깜짝 제안’하면서 다시 추진됐다. 푸틴 대통령이 평화조약을 언급하면서 ‘전제조건 없이’라는 말을 붙인 건, 쿠릴열도 4개 섬(이투루프섬·쿠나시르섬·시코탄섬·하보마이군도) 지역은 이번 평화조약 논의에서 제외하자는 뜻이다.

러시아와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국’으로 맞붙은 후 70년이 지난 현재까지 어떠한 평화조약도 체결하지 않았다. 이는 러시아 캄차카반도와 일본 홋카이도섬 사이에 있는 쿠릴열도 4개 섬에 대해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현재 쿠릴열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임기 중 이 섬들을 반환받기 위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 등 노력을 기울여 왔다.


[가상 국가 왈] 「 가상국가 독일 」은 일본의 동맹국이다. 「 가상국가 독일 」은 소련(러시아)과 독일-폴란드 국경 문제가 오데르-나이세 선에서 그대로 남아 있다. 2차 대전 승전국인 소련이 일방적으로 선을 그어 만들어진 국경선이어서 그렇다. 이 문제는 러-일 쿠릴 열도 영유권 문제 와 패키지로 처리할 것을 역 제안한다. <삭제> 「 가상국가 독일 」은 이 협상에서 물러설 수 없다. 이 협상에서 물러서면 오데르강을 중심으로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 것 외에 어떠한 선택권도 남지 않게 된다. 앞서 계속 말해왔듯이, 우리(독일)군이 소련군 공세 개시일 딱 일주일전(19년 1월 8일 새벽)에 협상 개시 선언을 하지 않았다면 소련군은 2019년 1월 15일에 전 전선에서 압도적 전력을 폴란드에 투입시켰을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 비스툴라-오데르 공세 개시일은 1945년 1월 12일이었다.  






[이다비 기자 dab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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