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1945/통일과 현대의 독일

[조선일보] [터치! 코리아] 홍콩 시위가 일깨운 제헌절의 참뜻 - 정치 칼럼

Jacob, Kim 2019. 7. 24. 00:37






2019년 7월 20일자





[칼럼 전문]





2차 대전 패배 이후 독일 역사가 4년간 연합국 4개국 분할 점령→4년 방치된 독일로 바뀐 데 기막힘

결국 독일을 3년여 풀어준 것 뿐 / 용납할 수 없는 정치 협상 / 독일 내전 발발 우려감 / 다시 군국주의 국가로 회귀할 것

독재와 민주주의는 공존 불가… 홍콩 시위 이어 대만도 술렁
남북의 체제 경쟁은 헌법 경쟁… 번영의 바탕엔 헌법 있었다





중학교 세계사 시간에 아편전쟁과 홍콩의 영국 할양을 처음 알게 된 후 오랫동안 필자는 홍콩 반환을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믿었다. 홍콩인들이 파란 눈 서양인의 지배를 벗어나 검은 눈 동포에게 돌아가길 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홍콩인들은 한 세기 만에 나타난 중국을 두려워했다.

왕자웨이 감독의 1994년 영화 '중경삼림'은 그런 분위기 아래 만들어졌다. 영화에서 애인에게 버림받은 주인공 남자는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통조림을 사모으며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푸념을 반복한다. 영국은 오랜 연인이며, 통조림 유효기간은 1997년 홍콩 반환까지 3년 남았던 당시 상황의 은유임이 분명했다. 홍콩인들이 돌아가게 될 조국은 민주화 요구 시위를 탱크로 깔아뭉개는 인권 탄압 국가였다.

지금 거리에서 반중(反中) 구호를 외치는 홍콩인들은 국가권력에 의해 언제라도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당할수 있는 나라에 사는 자신들 처지가 기막힐 것이다. 영국 치하에선 상상할 수 없었던 추락이다. 송환법 사태로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시위 현장에 등장한 '홍콩의 주권을 지키자'는 구호와 다시 나부끼는 영국령 홍콩기는 중국인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명백한 거부 표시다. 중국 눈으로 보면 반역이겠지만, 사람은 타고나길 국가나 민족 같은 대의(大義)보다 내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는 체제에 끌리게 돼 있다.

중국으로부터 일국양제(一國兩制) 통일을 강요당하는 대만인들에게 홍콩 반환은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저런 중국과 어떻게 통일하는가'라는 두려움이 얼마나 컸던지 내년 1월 치러질 대선 판도마저 요동치고 있다. 바닥을 기던 대만 독립주의자 차이잉원 총통의 지지율이 단숨에 1위로 치솟았을 정도다. 미국을 방문 중인 차이 총통은 "홍콩의 일국양제 경험은 독재와 민주주의가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세계에 분명히 폭로했다"고 단언했다. 누가 이 말을 반박하겠는가.

통일의 대의가 아무리 근사해도 용납할 수 없는 체제를 받아들이면서까지 할 수는 없다. 하나의 국가 안에서 양립 불가능한 가치가 경쟁하면 내전이 벌어진다. 타국과의 전쟁은 대부분 무릎 꿇리고 배상금 받아내는 것으로 끝나지만, 내부의 적끼리 하는 싸움은 반대편의 씨를 말리는 것으로 끝장을 본다. 캄보디아 킬링필드가 그랬고, 우리의 6·25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해방의 주춧돌 위에 제헌(制憲)의 기둥을 세우고 나라라는 집을 지었다. 남과 북이 해방 후 벌여온 체제 경쟁은 그런 의미에서 헌법 경쟁이기도 했다. 북한은 정권 수립과 함께 김일성 왕조의 헌법을 공포했다. 지난 11일 공개된 개정 북한 헌법도 김정은을 국가수반으로 하는 왕조 헌법일 뿐이다. 반면 대한민국 헌법은 민주공화국으로서 국민이 국가의 주인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우리 헌법은 종교·언론·결사·신체의 자유 등을 천명한 임시정부 헌장을 계승했다. 이승만 박사가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를 계승했다"고 선언한 자리가 제헌국회 개원식장이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그 헌법으로 지은 집에 살며 성공의 역사를 써 왔다. 향후 이 땅에 들어설 통일 한국의 헌법도 대한민국의 가치를 수호하고 성공을 이어가는 내용이어야 한다.

홍콩 사태를 지켜본 대만인들은 "우리와 통일을 원하면 먼저 민주화부터 하라"고 중국에 외친다. 그것은 중국 헌법을 바꾸라는 요구이며 대만 헌법을 지키겠다는 선언이다. 71주년 제헌절을 무관심 속에 보낸 우리에게 홍콩과 대만인들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대들이 이룬 위대한 성취의 바탕에 대한민국 헌법이 있었다."





[김태훈 논설위원·출판전문기자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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