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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터키의 자존심과 F-35

Jacob, Kim 2019. 7. 24. 00:58







2019년 7월 22일자





[기사 전문]





[매경프리미엄] [군사AtoZ 시즌2-10] 미국과 터키가 F-35 전투기를 놓고 벌이던 갈등이 결국 미국의 F-35 터키 판매 불가 방침 확정으로 일단락됐다. 터키는 러시아의 방공미사일 체계인 S-400을 도입하고 미국은 F-35를 팔지 않기로 했다.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 16일 공식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F-35 프로그램에서 터키를 제외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터키는 F-35 개발·제작 프로그램에 초기부터 투자해 지분이 있는 국가였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사용됐다. 미국이 터키에 F-35를 판매하지 않고 부품 공급 국가 리스트에서도 빼버림으로써 터키는 미국과 사이가 틀어지고 경제적으로 약 90억달러 손해를 보게 됐다. 터키는 F-35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8개국에 들어 있을 정도로 이 사업에 애착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이를 포기했다.

터키가 F-35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결국 포기하기까지 거쳐온 일들을 이해할 때 역사적 배경 속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 지정학적 영향력이 상당히 컸다. 현재도 이슬람권 국가들을 이끌 리더국 자리를 놓고 사우디아라비아·이란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후손라는 민족의식도 매우 강하다.

F-35 프로그램에 남지 않기로 결정한 터키의 집권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을 등에 업고 있다. 터키인 자존심에 이슬람과 기독교 간 전통적 갈등 요소가 더해지면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미국(서방국가)과 관계는 '양날의 칼'인 셈이다. 너무 가까우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싫어하고 그렇다고 너무 멀어지면 외교적 불안 요인이 된다.

하지만 F-35 갈등 국면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지 세력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편에 섰다.

터키 외교사에서 중요한 러시아가 이번에도 등장한다. 미국 F-35 프로그램에서 터키가 퇴출된 직접적 원인은 러시아의 S-400 방공미사일이다. 터키에 러시아는 흑해 건너편에 있는 초강대국이다. 러시아 세력이 남하하는 경로에 위치한 터키는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갈등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가 2014년 크림 반도를 합병하면서 양국은 서로를 코앞에 두는 관계가 됐다. 터키가 나토에 속하기는 하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러시아 움직임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이러한 지정학적 배경이 한몫하고 있다.

터키가 러시아와 관계를 부드럽게 할 소재로 S-400을 선택한 배경에는 실제로 주변국이 공습을 받은 역사적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이스라엘 공군은 이라크 핵시설을 1981년 공습해 파괴했고 2007년에도 시리아 핵시설을 공격했다. 러시아는 중동 지역에서 얽히고설킨 갈등 관계를 이용해 미국과 터키 간 F-35 프로그램의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터키가 F-35 개발에 참여한 것은 2006년이다. 에르도안이 집권하기 이전이었다. 터키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연결끈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고 F-35 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기술 이전과 부품 판매라는 소득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F-35가 개발을 마치고 실제로 기체가 각국에 인도되기 시작하는 시기에 사이가 틀어진 것이다.

나토 소속 국가로서 서방과 우호 유지, 전통적인 대러시아 외교, 자국 영공 방어라는 고차 방정식에서 에르도안의 결정은 긴급한 문제 해결에 최대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흘렀다. 바로 정치적 안정이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정의개발당(AKP)은 선거에서 잇단 패배를 겪으며 원년 창당 멤버가 탈당하는 등 수세에 몰려 있다. 이러한 정치적 위기에서 터키가 F-35 프로그램에 남아 있기 위해 러시아의 S-400을 포기한다면 터키인 자존심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과 협력을 끊음으로써 친미로 기울어 있다는 정치적 공격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정치적 이유로 F-35 개발 참여국 지위를 포기했지만 미국이 이를 계속 문제 삼기는 어려워 보인다. 터키는 여전히 자국 영토에 미군이 사용할 기지를 제공해 주고 있고 미국도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터키와 일정 수준에서 협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러시아·터키 세 나라가 첨단 전투기와 방공미사일을 놓고 벌였던 국제 외교전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안두원 기자]







원문보기: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19/07/26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