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4일자
[기사 전문]
中·러에 맞선 배타적 연합 전선… 기지 운영 등 美 안보우산 혜택
15국 도입, 日 147대로 美빼면 1위… 도입국들 GDP, 中 일대일로 앞서
터키가 러시아판 사드 부품 사자 美는 100대 수출 계약 전격 취소
'이런 글로벌 경제·안보 프로젝트가 있다. 총비용은 1조달러(약 1210조원)가 넘고, 가입국 국내총생산(GDP)을 합치면 세계의 46%다. 이 프로젝트는 주도국의 이익과 영향력을 강화하지만 다른 회원국은 비대칭적인 상호의존 관계로 만들도록 설계돼 있다. 참여국은 큰 경제적 보상을 얻지만, 그 네트워크에서 빠져나오려면 훨씬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언뜻 중국 시진핑 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신실크로드)'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중국이 남태평양·아프리카·중동 수십개 국가에 저금리로 거액의 차관을 제공하거나 인프라 건설을 통해 자원 개발을 지원하지만,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국가들이 항만 등 인프라 시설 운영권을 중국에 넘기거나 군사기지를 확장하도록 해주는 등 종속 관계로 엮이는 것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답은 미국의 5세대 전투기 F-35 프로젝트이다.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가 F-35의 글로벌 배치가 중국·러시아 등 적성국에 맞서 은밀하게 배타적 연합전선으로 작동하는 '미국판 일대일로'라는 분석을 최근 내놓았다.
일대일로에 가입한 70여 개국의 총 GDP는 세계의 40%로, F-35 프로젝트보다 규모가 작다. 또 안보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F-35 프로젝트에서 누락되는 게 더 치명적이라고 FP는 설명했다.
록히드마틴사의 F-35는 현존 최신예 스텔스(stealth·적의 탐지를 피해 공격하는 기술) 전투기이다. 기체 반사면적을 획기적으로 줄여 탐지 레이더에 작은 새나 골프공 정도로 표시된다. 적의 전투기·대공미사일·레이더·전자전 장비에 탐지되지 않고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영공을 통과하는 등 다양한 작전을 구사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 등도 자체 개발한 스텔스기가 있지만 F-35에 대적하기엔 턱없이 모자란다. '하늘의 지배자'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이유다.
현재 F-35를 도입한 나라는 미국과 아시아·유럽·중동 동맹 15개국이다. 인도·사우디아라비아 등 도입을 논의 중인 나라도 8개국 이상이다. 모두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동맹국들이다. 한국·일본·호주 등 아시아·태평양에만 2025년까지 총 220대가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한국에서 F-35는 유사시 북한 핵심 시설을 타격할 수 있는 '대북 킬체인(kill chain·미사일 선제 타격 시스템)'의 핵심 전력이다. 일단 40대를 도입하지만, 미 상원은 한국에 130대까지 팔 수 있게 승인해놨다. 지난 21일로 6대째 들어왔다. 일본도 전후(戰後) 처음 띄우는 항공모함에 F-35를 탑재키로 했다. 일본은 147대를 들여오기로 했다. 미국을 제외하면 최다 보유국이 된다.
F-35 프로젝트가 '일대일로'처럼 국가 간 네트워크 사업 성격을 띠는 것은 조종사 훈련, 운용기술 이전, 전용 부대 설치와 기지 운영까지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미국의 포괄적 군사 지원을 받는 '안보 우산'을 쓰는 셈이다. FP는 "중국이 어떤 나라에 '항구를 못 지어주겠다'고 하면 일대일로를 탈퇴하고 중국 대신 다른 공급선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미국이 F-35를 안 팔면 다른 안보 우산으로 대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F-35 판매를 정상(頂上) 외교의 핵심 의제로 직접 챙긴다. 그는 지난 6월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방미 때 워싱턴 DC 상공에 F-35 비행을 지시했다. 러시아의 압박을 받는 폴란드는 즉각 F-35 32대 구매 계획을 공식화했다.
그렇다고 돈만 내면 살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지난달 터키 수출분 취소 사태가 단적으로 보여줬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일원으로 F-35 공동 개발국에 포함된 터키 정부는 당초 100대를 계약해놓고, '러시아판 사드'로 불리는 러시아제 지대공미사일 방어체계 S-400 도입도 함께 추진했다. 미국은 "F-35와 S-400 시스템을 연동하면 우리 기술이 러시아에 유출될 우려가 있다"며 반발했다. 그런데도 터키가 S-400 부품을 도입하자 백악관은 "터키에 F-35 수출을 전면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터키가 이미 구매한 4대도 인도하지 않고, 부품 공동 생산에서도 배제키로 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터키는 F-35 공동 생산 프로젝트에서 동체와 착륙장치, 조종석 디스플레이 등을 맡아 부품 900여개를 납품해왔다. 연 120억달러(14조500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터키의 항공·우주 분야 8년치 수출액과 맞먹는다. 대미 관계가 흔들리자 당장 리라화가 폭락했다. "대체 전투기를 알아보겠다"며 반발하던 터키는 현재 미국과 물밑 대화를 이어가며 S-400 도입 취소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F-35 네트워크가 일대일로보다 빠져나가기 어려운 것이다.
미국의 혈맹 이스라엘도 F-35 도입 계획을 세운 2005년에 이스라엘 무기 부품을 중국에 팔았다가 미국의 경고를 받고 수출을 즉시 중단했다. 대만은 F-35 도입을 추진했지만 미국이 "중국 코앞에 F-35를 배치하면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할 수 있다"며 판매를 거부, F-16으로 급을 낮춰 도입한 경우다.
[정시행 기자 polyg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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