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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시리아 침공·리비아 파병… 오스만제국 영화 꿈꾸는 터키

Jacob, Kim 2020. 1. 11. 00:42








2019년 12월 28일자





[기사 전문]





동지중해·북아프리카로 진출, 북키프로스와 가스전 개발도
나토 회원국이지만 독자 행보… 美 견제에도 러시아에 접근





터키가 서(西)로는 동지중해, 남(南)으로는 시리아와 바다 건너 북아프리카까지 영향력 행사에 나서고 있다. 터키의 뿌리인 오스만제국이 지배했던 지역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과거의 영화를 되살리려 시도 중이다. 오스만제국은 16~17세기 북아프리카, 발칸반도, 아라비아반도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지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26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내전 중인 리비아에 터키군을 파병하겠다고 밝혔다. 리비아는 2011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축출된 이후 수도 트리폴리가 있는 서부는 유엔이 인정하는 통합정부가 들어서 있고, 동부는 카다피의 수하였던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이 이끄는 리비아국민군이 통치하며 내전을 벌이고 있다. 올 들어 군사적으로 우세한 리비아국민군이 통합정부를 공격하며 양측에서 1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자, 터키가 같은 이슬람계인 통합정부를 보호하기 위해 개입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리비아에 대한 파병은 에르도안이 북아프리카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미 터키는 지난달 리비아 통합정부와 안보·군사 분야에서 협력하고 동(東)지중해에서 공동으로 해상 방어를 한다는 두 가지 협정을 체결했다. 에르도안은 파병 계획을 밝히며 "터키는 역사적으로 오스만제국이 한때 지배했던 리비아와 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투르크민족이 차지했던 지역에 터키군을 보낸다는 역사적 당위성을 부여한 것이다.

올 들어 터키는 미국·EU의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세력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5월부터 터키는 동지중해의 섬 키프로스에서 친(親)터키계인 북키프로스와 손잡고 인근 해역에서 천연가스 시추를 시작했다. 북키프로스는 국제사회에서 국가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그리스·이집트 등이 시추 중단을 요구했지만 에르도안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이달 16일에는 북키프로스에 군사용 드론(무인기) 3대를 배치해 천연가스 시추선에 대한 경비를 강화했다. 동지중해에서 근년에 잇따라 석유와 가스 자원이 발견되자 선점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다.




지난 10월에는 시리아에서 미군이 철수를 결정하자마자 국경을 넘어 시리아의 쿠르드족에 대한 군사 공격을 감행했다. 독립 국가를 꿈꾸며 터키와 시리아에 퍼져 있는 눈엣가시 쿠르드족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서였다. 미군이 사라진 틈을 타 남진(南進)하며 영향력을 키우는 행보였다.

터키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면서도 나토의 주적인 러시아로부터 방공 미사일 시스템(S-400)을 도입하며 미국·EU와 갈등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EU는 터키를 저지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동의 테러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터키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에 터키의 눈치를 본다. 터키에는 50개가 넘는 미군 핵무기가 배치돼 있다. 또 터키는 나토 29개 회원국 중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43만명)을 보유하고 있어 나토가 쉽게 내칠 수 없다.

미국 입장에서는 시리아에서 철수한 이후 러시아·이란이 시리아에 대한 영향력을 독점하지 않게 하려면 터키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러시아·이란은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과 손잡고 시리아 북서부 이들립 지역의 반군을 공격하는 중이며, 터키는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 이와 관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6일 "러시아, 시리아, 이란이 무고한 민간인 수천 명을 죽이는 대학살을 중단시키기 위해 터키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시리아 문제에 미국이 터키에 매달리는 형국이 된 것이다. 유럽은 터키가 중동 난민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방파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에르도안은 이런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해 유럽 주요국의 비판을 받을 때마다 "난민을 통과시켜버리겠다"며 위협하고 있다.




터키가 사방으로 손을 뻗치고 있지만 장벽도 만만치 않다. 리비아에서는 하프타르 장군이 이끄는 리비아국민군을 러시아·프랑스·사우디아라비아가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터키가 통합정부에 파병하더라도 영향력 확대가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고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터키 내에서 16년째 장기 집권 중인 에르도안에 대한 피로감이 쌓이는 것도 변수다.

뉴욕타임스는 "터키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져 있어 에르도안의 대외 영향력 행사가 오래 지속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보도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aur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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