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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신문] [박규완 칼럼] '킨들버거의 함정'

Jacob, Kim 2020. 1. 24. 22:31








2020년 1월 9일자





[칼럼 전문]





트럼프의 좌충우돌 리더십

동맹가치 상업적으로 훼손

한반도 주변 정세 생존법은

자강·실리·유연함으로 무장

실사구시의 정신 실천해야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아테네 출신의 역사가이자 장군이었던 투키디데스가 편찬한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 나오는 용어다. 신흥 강대국이 급부상하면서 세력 판도가 흔들리면 기존 강대국과의 무력 충돌로 이어진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실제 기원전 5세기 맹주 스파르타는 신흥 강국 아테네와 전쟁을 벌였다. 작금의 미·중 상황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말로 치환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무력 충돌을 벌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킨들버거의 함정'에 빠질 개연성이 농후하다. 아니 '킨들버거의 함정'은 이미 진행 중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저서 '대공황의 세계 1929~1939'에서 대공황의 원인을 세계 리더십 공백에서 찾았다. 1차 대전 후 최강대국이 된 미국이 패권국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미국은 1929년 스무트-홀리법을 제정해 수입 공산품에 최고 40%의 관세를 물렸다. 이는 유럽·아시아의 보복관세로 이어졌고, 3년 만에 세계 교역량은 25%나 줄었다. 패권국 미국이 리더십 발휘는커녕 대공황 촉발의 뇌관을 건드린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에 매몰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폭탄은 스무트-홀리법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동맹의 가치마저 상업적으로 폄훼한 트럼프에게 패권국 리더십은 기대난망이다. 트럼프의 좌충우돌은 무역과 동맹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후변화 대응에 동참하겠다는 포드자동차를 맹비난했으며, 그린란드를 팔지 않는다고 예정된 덴마크 방문을 취소하는 진상을 부렸다. 이란 군부 실세 솔레이마니 살해 지시는 미 국방부도 깜짝 놀랄 만큼 충동적이었다. 독일국민 여론조사에선 트럼프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인물 1위로 지목됐다. 김정은이 2위였다. 오죽하면 '트럼프 리스크'란 말이 나왔겠나.

트럼프뿐 아니다. 세계 4강 지도자 모두 '진상 성향'이 다분하다.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론을 주창한 요시다 쇼인이다.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뒤집고 과거사 문제에 경제를 끌어들인 아베의 정체성이 뜬금없는 게 아니다. 3년째 사드 보복을 풀지 않는 시진핑 주석의 면후심흑(面厚心黑)도 만만찮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상대국 정상을 회담장에서 2~3시간씩 기다리게 하는 무례가 상습적이다. 김정은도 진상 반열에서 빠지면 아쉽다. 비핵화는 미적거리면서 '삶은 소대가리' 따위의 원색적 용어를 동원해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을 거칠게 비난한다. 그 방약무도함이 조폭을 빼닮았다.

한반도 주변 정세도 전례 없이 척박해졌다. 보수단체 집회에선 '한미동맹은 영원하다'는 플래카드가 등장한다. 과연 그럴까. 미국 본토가 위협받아도 한국을 지켜줄까. 북한 비핵화도 마찬가지다. 이제 페르귄트 같은 몽상가 말고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믿는 사람은 없다.

긴박한 정세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법은 자강과 실리, 유연함이다. 자강은 절대무기 핵을 아우르는 담대한 포석을 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미사일 사거리 등 미국이 채운 안보 족쇄도 풀어야 마땅하다. 소손녕과 담판으로 거란군을 철수시킨 서희의 실리외교를 벤치마킹하고, 명분에 얽매여 호란(胡亂)을 자초한 인조의 무능과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덩샤오핑의 실용노선이 담긴 '흑묘백묘론'의 함의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도 실사구시 정신이 국가 정책에 발현됐을 때 경제가 번창하고 안보도 탄탄했다. 각자도생의 방책을 서둘러야 '킨들버거의 함정'의 희생양이 되지 않는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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