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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北의 도발을 도발이라 말하지 못하는 우리 軍 - 테스트보드

Jacob, Kim 2020. 5. 3. 23:38








업로드 : 2020년 5월 3일자








테스트보드


1. 9·19 군사합의 제 1항에 드는 의문점 3가지

  ○ 지상, 해상과 공중을 포함한 모든 공간에서? ① 

  - 전장 공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적대 행위가 벌어진 전장 그 자체를 말는 것인가, 아니면 해당 

    전장과 그 주변 영역이 아니라 (적대 행위가 벌어진) 해당 전장으로만 국한된 것인가? 

  ○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② /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 행위? ③

  - 적대 행위의 시발부터 종료까지 모든 행위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인가? 

    적대 행위의 근원을 어디서, 무엇으로부터 정의하는가? / 

    남한이 북한에 대해 역으로 적대 행위를 벌였다는 것인가?  


2. 날씨가 흐린 것은 도리어 북한군의 은폐, 집결, 기동을 더 용이하게 해주지 않았나? 


3. 해당 GP에서 북 측 영농 지역은 아무런 이상 행동이 없었다?


4. 사격 개시가 해당 GP에서 벌어졌다면? 또는 이를 숨기기 위해 이 곳에서 사격을 하고 다른 곳에서 돌파를 감행한다면? 


5. 북한군 기습 돌파시, 적의 공세에 놀란 우리군이 불명확한 산발적인 응사로만 대응했다면? 


우리군은 이 경우 그 자리에서 버티면서 (증원 전력이 도착할 때까지) 적을 해당 지역에서 돌파로 나오지 못하게 묶어놓는 것이 제 1 임무일 것이다. 이를 놓고 본다면, 공세 직전 북한군이 주 병력의 움직임을 숨기기 위해 펼치는 기만 작전일 가능성 있다. 주 병력의 움직임을 놓치면 우리군은 엉뚱한 지역에서 미끼로 남겨진 북한 병력과 싸워야 하고, 그 대신에 북한군은 수월하게 다른 방면으로 진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1943년 11월 3일 2차 키예프 전투에서 만슈타인은 류테즈 교두보에서 소련군이 치고 나올 것으로 예

      상했으나 소련군은 그 곳에 없었다. 만슈타인의 예상과 달리 야음에 비밀리에 키예프 교두보로 병

      력을 이동시킨 바투틴군은 그 다날 키예프를 향한 기습 공격을 개시하여 돌파구를 열었고, 결과적

      으로 독일 남부집단군의 북익이 뻥 뚫려버리게 되었다. 바투틴군은 남아 있는 독일군의 저항을 뚫

      고 1943년 11월 6일에 키예프에 입성하였다.          








원문보기: http://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9416&Newsnumb=2020059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