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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데스크의눈] 새 외교안보라인과 ‘상상의 질서’

Jacob, Kim 2020. 7. 24. 16:31

 

 

 

 

 

 

2020년 7월 14일자

 

 

 

 

 

 

[칼럼 전문]

 

 

 

 

 

 

독일 통일 이끈 브란트와 겐셔
평화와 공존의 상상 이루어내

대결로 분단 해소 못하는 南北
다함께 평화번영정책 꿈꿔야


 

 

 

 

 

“지난 20년간의 모든 맹세나 노력도 분단을 약화시킬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분단의 심화 경향조차 막을 수 없었습니다.” 1970년 2월13일, 빌리 브란트는 코펜하겐을 찾아 분단을 넘어서려는 독일의 노력을 설명하면서도 빠른 통일의 가능성은 부정했다. “국민국가적 기반 위의 통일이 가까운 장래에는 불가능하다는 통찰이 나옵니다.”

브란트는 동독과 대결적인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면서도 통일이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평화와 공존을 추구하는 ‘동방정책’을 펼친다. 그가 “평화가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평화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평화 정치’의 슬로건을 내건 이유다.

브란트의 연설집 ‘평화에의 의지’를 보면, 스페인내전에 특파원으로 뛰는 등 반파시스트 활동을 벌인 그는 오래전부터 평화와 공존이라는 ‘상상의 질서’를 꿈꿔왔음을 알 수 있다. 연방의원이던 1952년 6월 “끝없는 공포 속에서 사는 것보다는 공포 속에서 종말을 고하는 게 낫다”는 동독 시민들의 체념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통일은 대화로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왜냐하면 독일 통일이 “군사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 될 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베를린 시장을 거쳐 1969년 제4대 서독 총리가 된 브란트는 1970년 동독과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1972년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경제교류와 가족상봉 등을 시작했다. 이른바 ‘작은 걸음’ 운동을 통해 평화적 공존관계라는 동서독관계의 기초를 세웠다.

사회민주당 소속의 그가 꿈꾼 미래는, 정당은 다르지만, 1974년부터 무려 18년간 외무장관을 역임한 자유민주당 겐셔와 기독민주당 콜 총리로 이어졌다. 겐셔와 콜 역시 평화와 공존이라는 상상의 질서를 함께 꿈꾸며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이후 역사는 우리 모두 아는 바다.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졌고 1990년 독일 통일이 벼락처럼 찾아왔다. 국민들이 지지하고 미국과 소련 등 주변 강대국이 동의한 통일의 시작은 브란트와 겐셔 등이 함께 꿈꾼 상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외교안보실장에 서훈 전 국정원장, 통일장관에 이인영 의원, 국정원장에 박지원 전 의원을 각각 내정하고 강경화 외교장관과 정경두 국방장관 등과 호흡을 맞추도록 했다. 새 외교안보라인도 브란트와 겐셔처럼 현명한 상상의 질서를 함께 꿈꾸고 하나씩 기초를 다져주길 기대한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상상의 질서로 구체화한 상상력이야말로 인간이 지구에서 거대한 협력 네트워크를 탄생시킨 원동력이라고 했다. 즉 신이나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등 상상의 질서가 새 시대를 열었다는 거다. 하라리의 다음 조언이 새 외교안보라인을 비껴가지 않길 빈다. “현존하는 가상의 질서를 변화시키려면 그 대안이 되는 가상의 질서를 먼저 믿어야 한다.”

이들이 함께 꿈꿔야 하는 상상의 질서 역시 브란트와 겐셔 등이 꿈꾼 구상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남북한 역시 군사적인 방법으로 분단을 해소할 수 없고(해서도 안 되며), 통일까진 오랜 기간이 불가피해 보여서다. 한반도를 둘러싼 구조가 독일을 둘러싼 그것과 다르고, 남북한 격차도 동서독의 그것보다 더 크며, 6·25전쟁 등으로 분단체제 역시 매우 공고하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남북 평화와 공존,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방법밖에 없다. 결국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과 노무현정부의 ‘평화번영정책’ 등을 계승 발전시킨 문정부의 ‘한반도 신경제공동체’ 구상으로 수렴된다.

물론 북한 비핵화 없이는 평화공존을 추구해선 안 된다거나 개성 연락사무소까지 폭파하는 등 도발을 일삼는 그들과 마주 앉을 순 없다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도 많다. 통일 자체에 시큰둥한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평화와 대화 아니고서 어떻게 남북의 번영, 동북아 평화를 꿈꿀 수 있겠는가. 브란트가 1952년 6월 판문점에서 지루하게 이뤄지던 휴전협상을 주목한 이유를 들어보라. “비록 그것이 강대국과의 관계에 관련되는 견디기 어렵고 신경질 나는 협상이거나 한 달 혹은 1년이 걸리고 결실 없는 협상이 된다고 할지라도, 나는 제3차 세계대전의 1분보다는 낫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김용출 외교안보부장

 

 

 

 

 

 

원문보기: http://www.segye.com/newsView/20200714523499?OutUrl=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