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0일자
[칼럼 전문]
핵 협상 기대하다 안보 약화 초래
핵 완성 이후 북한 의도 경계해야
미국 국방부 산하 육군부는 북한이 핵무기 20~60개를 보유하고 있고 매년 6개를 추가할 수 있다고 ‘북한 전술’ 보고서에서 밝혔다. 더군다나 북한이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 첫 시험에 성공한 지 3년이 됐으니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때가 됐다.
북핵은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 비핵화의 비현실적 희망이 안보 약화로 연결되는 엄중한 사태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은 국가에너지를 효과적인 곳에 집중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다. 북한은 핵을 폐기할 의사가 없다. 북한 지도자의 눈으로 보면 미국에 대항하고 있는 나라 중 핵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면 모두 미국의 압박에 시달린다. 리비아와 이라크는 이미 쑥대밭이 됐고 이란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북한은 비핵화로 대미 관계를 개선하려는 것이 아니라 핵을 완성함으로써 대미 관계를 전환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핵을 거의 완성한 2018년 초 협상에 일단 나왔다. 북한이 말하는 핵 협상은 ‘부분적인 비핵화’를 통해서 경제적 활로를 찾고 동시에 미국의 대북한 적대 정책을 바꾸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30년간 ‘북한의 돌이킬 수 없는 완전한 비핵화’에 한 번도 수긍한 적이 없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가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북한은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러나 세습 독재 체제인 ‘불량 국가’에 미국이 우호적으로 정책을 선회할 가능성은 없다. 북한 지도부도 그런 헛된 희망에 매달릴 만큼 어리석지 않다.
미국은 대북 적대 정책을 바꾸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북한의 핵무장은 계속될 것이란 점을 중국도 잘 알고 있다. 중국 정부가 북핵 문제의 ‘해결’보다는 ‘관리’로 방향을 잡은 지도 꽤 됐다. 중국에 북핵은 동북아 정치학에서 중요한 하나의 변수일 뿐이다.
4년마다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미국은 최근까지도 큰 채찍과 큰 당근을 효과적으로 구사하면 북한 비핵화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이 직접 북한 지도자를 세 번이나 만났다. 하지만 지금은 북핵 협상은 문제 해결의 방책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레토릭의 성격이 짙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해도 미국은 북한을 핵 국가로 인정할 수 없고 군사력으로 비핵화시키겠다고 말할 수도 없다. 북한과의 핵 협상 가능성을 열어 놓는 이외에 다른 정치적 대안이 별로 없다.
미국에서 북핵 문제는 북한 자체가 변화할 때 비로소 풀리기 시작할 것이라는 평가가 대세다. 결국 미국은 대북 제재를 유지하며 북한을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 성공 여부는 상당 부분 미·중 관계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 가장 중요한 사실은 무엇인가. 북한은 미국 본토를 겨냥한 핵을 완성함으로써 미국에 쳐들어가려는 것이 아니다. 북한 내부를 다지고 나아가 남한 장악을 시도할 때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다. 소위 대미 억지력이다.
북한은 언젠가 한국의 정치·사회적 혼란이 극심해질 때 재래식 무기, 특수부대, 공작원만으로도 남한을 장악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북한이 핵을 쓰면 곧 망한다.
핵을 완성한 북한이 핵을 사용하지 않고 남한을 장악하려 할 때 어떤 일이 생길까.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 한국의 파괴적 국론 분열, 한·미 동맹 와해라는 세 가지가 겹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한국 정부는 이런 실존적 위험을 명심하고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미국과 함께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국가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대화 여지를 얼마나 남겼는지, 연내 핵 협상 정상회담이 열리는지는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지금 한국 정부와 국민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해야 한다.
황준국 한림대 객원교수·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원문보기: https://news.joins.com/article/23852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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