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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특파원 칼럼] 대만해협 중간선 침범에 담긴 뜻 / 정인환

Jacob, Kim 2020. 10. 10. 05:14

 

 

 

 

 

 

2020년 10월 8일자

 

 

 

 

 

[칼럼 전문]

 

 

 

 

 

 

정인환 l 베이징 특파원

 

 

 

 

 

“하이난 다음은 대만이었다. 그때 김일성이 조금만 늦게 움직였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얼마 전 만난 중국 외교안보 전문가가 한 말이다. ‘대만 문제’를 바라보는 중국 주류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뒤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듬해인 1950년 3월5일 남중국해 하이난섬을 두고 인민해방군과 국민당군의 치열한 전투가 시작됐다. 공방전은 그해 5월1일 끝났다. 살아남은 국민당군은 대만으로 철수했다. 그로부터 꼭 55일 뒤 한국전쟁이 터졌다.

애초 미국은 대만 문제에 개입할 의사가 없었다. 해리 트루먼 당시 미 대통령은 1950년 1월5일 “중국군이 포모사(대만)를 무력 공격해도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전쟁 발발 직후 태도를 바꿨다. 그는 1950년 6월27일 성명을 내어 “공산군이 포모사를 점령하는 것은 태평양 지역 안보와 미군의 안전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냉전의 최전선이 된 한반도 주변으로 미군의 화력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미 해군 제7함대가 대만해협에 배치됐다. 중국군은 대만으로 향할 수 없었다.

중국 공군은 1949년 11월 창설됐다. 그보다 넉달 앞선 7월 중국 공군 사상 첫 비행전단이 꾸려졌다. P-51 무스탕 전투기 6대, DH-98 모스키토 폭격기 2대, PT-19 페어차일드 훈련기 2대가 전부였다. 70년 세월이 지난 오늘은 어떨까? 미 국방부는 지난 9월1일 펴낸 연례 <중국 군사력 보고서>에서 중국 공군을 미국·러시아에 이은 “세계 3대 공군”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중국 공군은 전투기 1500대, 폭격기 450대, 수송기 400대, 정찰기 등 특수목적기는 150대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대만군은 전투기만 400대를 보유했을 뿐 폭격기는 없다. 수송기와 특수목적기도 각각 30대에 그친다. 단순 수치상으로만도 2500 대 460, 비교할 수 없는 차원이란 뜻이다.

건국 71주년을 맞아 중국 대륙이 8일 동안의 긴 휴가에 들어간 지난 1일 중국 공군 Y-8 대잠초계기가 대만 서남쪽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했다. 같은 비행기는 3일과 4일, 6일에도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같은 장소로 날아들었다. 7일엔 KJ-500 공중조기경보기가 대만 방공식별구역 서남쪽 끝자락을 스치듯 지나쳐갔다. 그때마다 대만 공군은 초계기를 발진시켜 무선으로 퇴거를 요구하는 동시에, 지상의 방공미사일 체제를 가동해 중국군 항공기를 추적했다.

“올해 들어 중국군이 서남부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한 횟수만 219차례에 이른다. 특히 (중국과 대만의 해·공중 경계선 구실을 하는) 해협 중간선도 모두 49차례나 침범했다. 1990년 이후 30여년 만에 최다 기록이다.”

옌더파 대만 국방부장은 7일 입법원 외교·국방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에 맞서 대만 공군은 모두 2972차례나 대응 출격을 해야 했다. 대만 해군도 함정을 급파했다. <대만중앙통신>(CNA)은 “이로 인한 비용은 공군(255억대만달러), 해군(57억대만달러) 등 모두 312억대만달러(약 1조2542억원)로, 올 국방예산의 8.7%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왕쿵이 대만국제전략연구회 회장은 지난 3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해협 중간선을 넘어선 중국 전투기는 단 200초 만에 대만 해안선에 도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군이 넘어오면 대만군도 나서야 한다. 넘어오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치러야 할 비용도 커진다. 중국의 노림수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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