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1945/미소냉전-오스트리아

[인천일보] <11.4 대선> 인천상륙작전과 한미 동맹

Jacob, Kim 2020. 11. 11. 15:12

 

 

 

 

 

 

2020년 9월 15일자

 

 

 

 

 

 

[칼럼 전문]

 

 

 

 

 

 

매년 9월 15일은 인천상륙작전의 기념일이다. 이날은 우리들에게는 특히 각별하다. 이날의 작전이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갔던 한국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돌려 놓는 계기가 됐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한반도 통일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도 희미해지는 지금 그때 작전의 의미를 되살려 보고 이날을 어떻게 기념해야 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상륙작전 목적은 적의 보급로 차단과 적지 깊숙한 곳에 공격을 위한 교두보 확보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상륙작전의 성공은 정확한 정보와 물량 규모 그리고 하늘의 운(運)에 달려 있다. 1차 세계대전 시 영국 연합군은 터키 갈리폴리에 상륙작전을 펼치지만 잘못된 정보로 전함 3척을 잃고 엉뚱한 곳에 상륙을 하게 된다. 결국 30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는데 상륙작전을 지휘한 윈스톤 처칠은 20년 후 2차 세계대전이 될 때까지 큰 부담을 안게 된다. 

운도 상륙작전 성공에 큰 요인이 된다. 1274년 1281년 두 차례에 걸쳐 원나라가 고려 수군을 동원해 일본을 침공할 때 태풍으로 일본 앞바다에서 함대가 상륙도 못하고 수장된다. 약 600년 후 러일전쟁 때도 마찬가지였다. 1905년 러시아의 발트함대는 장기간 항해에 지쳐 괴멸한다. 일본은 원에 대한 승리가 신(神)이 도왔다고 해서 신풍이라고 하지만 결국 정보도 없고 운도 없어 결국 상륙작전에 실패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것은 막대한 물량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최악의 조건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은 진지 구축 등 충분한 준비를 갖춘 상태이기 때문에 적은 군사력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상륙하는 쪽은 많은 물량 공세로 비교우위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큰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사실 성공한 상륙작전으로 기억되고 있는 2차 대전의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나 여러 태평양 섬에 대한 상륙작전에서도 미국 연합군의 많은 손실과 위험을 감수한 결과로 성취한 것이고 인천 상륙작전 역시 큰 위험을 각오했던 것이다. 당시 김일성은 보급의 한계로 빠른 시일 내에 부산까지 밀어 버리려 했다. 다행히 부산 다부동전투에서 백선엽 장군이 버틴 덕분에 상륙작전에 능숙한 맥아더는 상륙작전을 생각했고 조석간만의 차가 크다는 상륙작전의 악조건에서도 성공을 했다. 이 작전으로 공산군은 보급로가 차단돼 전세가 역전된다. 결국 한국전 승리는 백선엽 장군의 낙동강 수성과 맥아더의 상륙작전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만약 낙동강 전선이 무너졌다면 상륙작전은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고, 상륙작전이 없었다면 전세의 만회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의 끝 무렵 국가 생존을 위해 미국의 필요성을 절감한 이승만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맺게 된다. 

역사를 살펴보면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면 도움이 끝나도 결국 지원국의 간섭을 받게 된다. 예전의 신라가 당나라의 도움을 받아 삼국통일을 이루고 당의 통제를 받았고 임진왜란 때는 명의 도움을 받아 군신관계를 맺게 됐던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거의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근대 이후에 국가가 성립하고 나서 국가 간 동맹관계는 한쪽이 피해를 보면 같이 응징하는 협력국으로 변한다. 이러한 동맹 관계로 인해 1차 대전과 2차 대전처럼 국가 간의 전쟁이 세계 전쟁으로 확전된 것이다. 따라서 동맹관계는 국가 안보를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국가 간의 약속이다. 최근 우리 정부가 한미 동맹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는데 있어 미국 정부는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참전으로 인해 공산침략으로부터 국가를 지켜낼 수 있었고 미국의 안보체제 내에서 현재와 같은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만약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해방은 물론 민주화나 현재와 같은 경제 대국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기념은 기념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인천 상륙작전의 날을 빌려 우리는 왜 다시 외세 즉 미국의 힘을 빌려 나라를 지켜야만 했는지 그리고 동맹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봐야 한다. 이렇게 할 때만이 기념식은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조촐한 기념식으로 대신할 것이 아니라 UN군이 참전하고 또한 한국전쟁의 큰 전환점이 된 만큼 인천시의 행사가 아니라 세계적인 축제의 날로 기념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참전했던 군함과 비행기를 전시하고 국제 세미나와 같은 국제적인 행사를 통해 우리 후대 세대와 참전국 모두가 같은 동맹국으로서 그때의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시금 자각해야 한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서 옳은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작전 자체가 없도록 그리고 전쟁 자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자각하고 힘을 기르고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전쟁은 결코 선(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준우 인천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원문보기: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886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