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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계의 창] 새 프레임이 필요한 북핵 정국 / 진징이

Jacob, Kim 2019. 4. 14. 22:15







2019년 4월 7일자





[칼럼 전문]





1953년 7월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은 석달 안에 “정치회의를 소집해 한국에서의 외국군 철수와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의 문제를 협의할 것”을 건의했다. 그렇지만 정치회의는 소집되지 않았고, 그 내용은 이듬해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열린 제네바 회의에서 논의됐다.


남북한은 제네바 회의에서 각자의 평화적 통일 방안을 내놓았지만, 한반도 문제를 좌우하는 키는 남북에 있지 않았다. 한반도는 한국전쟁 전부터 이미 미-소의 전략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사실 미국의 한국전 개입에도 한국을 잃으면 일본과 동아시아의 공산화를 막을 수 없다는 전략적 고려가 큰 몫을 했다. 그렇기에 전략적으로 한국은 다른 한 의미에서 완충 역할을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 후 미-소 냉전이라는 전략 프레임 속에서 남북은 무력 통일도, 평화적 통일도 억지되면서 이른바 ‘차가운 평화’를 유지해왔다. 동서 냉전이 끝난 뒤 소련은 사라졌지만, 냉전의 유산을 물려받아 여전히 ‘남방 삼각’ 대 북한이라는 미국 주도의 전략 프레임에 갇혀왔다. 북핵 문제는 바로 북한이 미국의 이 전략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 결과물이라 하겠다.


지난 30년 이 프레임은 북핵 프로세스를 거쳐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을 전례없이 강화해왔으며, 오늘에 와서는 그 연장선에서 ‘제재 프레임’으로 동북아를 꽁꽁 묶어놓고 있다.


지난해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북-미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약속했다. ‘9·19 공동선언’에도 명시된 내용이지만 북-미 양 정상이 직접 약속했다는 데는 획기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에 있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무엇을 의미할까?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기반은 동맹 체계다. 미국은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을 ‘핵심 동맹국’을 뜻하는 ‘린치핀’과 ‘주춧돌’로 묘사해왔다. 곧 다가올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백악관은 다시 한-미 동맹을 ‘린치핀’이라 칭하였다.


미국의 이 동맹 체계가 ‘가능’한 것은 주로 북한이라는 적대국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북핵이 있기에 더더욱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북한과 관계 개선을 이루고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면 어떻게 될까? 주한미군, 유엔사, 주일미군이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전략적으로 볼 때 한반도 현상유지는 미국에 이익이 된다고 했다.


결국 미국에 있어서 북핵 문제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연동된 복잡한 문제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에 이어 평화체제가 구축될 경우 파생될 지각변동을 전략적 차원에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하노이에서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빅딜 청구서를 존 볼턴이 내민 것은 바로 미국이 그러한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3차 북-미 정상회담을 희망하면서도 “북한 비핵화 때까지 제재 유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제 제재는 미국이 북한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나라를 죄는 긴고주(손오공 머리의 금테처럼 사람을 통제하는 물건)가 돼가고 있다. 미국이 주문을 외우면 이마에 쓴 쇠굴레가 관자놀이를 옥죄듯 남북 관계, 북-중 관계, 한-중 관계가 진통을 겪어왔다. 결국 ‘제재 프레임’은 미국 전략의 일환으로 동아시아와 대북 관계를 통제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세계는 북한의 ‘새로운 길’을 지켜보고 있다. 북한이 인공위성이든 무엇이든 발사하면 미국의 ‘전략 프레임’은 더욱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미국의 전략가들이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북한이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중국, 러시아와 북핵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면 어떻게 될까? 작금의 난국을 타개하려면 이젠 새로운 프레임이 나와야 할 것이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890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