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9일자
이마트 월계점 옆에 트레이더스
예상 깨고 원거리 소비자 불러모아
[기사 전문]
2016년 미국에서 대형 쇼핑몰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 “대형 쇼핑몰 시대가 끝났다”고들 했다. 그해 이마트는 스타필드하남 문을 열었다. 사람을 모을 수 있다고 했고 실제 계획대로 됐다. 코스트코 같은 창고형 할인매장 트레이더스를 열 때도 걱정이 많았다. 이마트 매출이 줄어들 것이라는 반대가 있었다. 지금 트레이더스는 16개나 영업 중이다.
이마트는 그동안 상식을 깬 전략으로 성장했다. 파괴적 사고는 DNA처럼 새겨진 듯하다. 창사 이래 가장 큰 어려움에 부딪치자 다시 상식을 깨기 시작했다. 이마트와 트레이더스가 한 공간에서 영업하고, 와인과 소고기를 한 공간에서 팔고, 패션 코너를 마트에 어울리지 않게 고급스럽게 꾸몄다.
경쟁 관계 이마트·트레이더스 한 공간에
이마트는 지난 3월 중순 ‘실험’을 했다. 이마트 월계점 바로 옆에 트레이더스 매장을 낸 것. ‘자충수’처럼 보였다. 대형마트인 이마트와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는 경쟁 관계다. 트레이더스가 대량 묶음상품을 이마트보다 저렴하게 팔기 때문에 손님을 뺏길 게 뻔했다. “이마트 월계점 매출이 트레이더스로 인해 30% 감소할 수 있다”는 보고서도 올라왔다. 그러나 경영진은 밀어붙였다. 1분기 이익이 전년 대비 반 토막 날 게 예상되는 상황에서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물론 ‘노림수’가 있었다. 트레이더스에 오는 소비자를 이마트도 들르게 하는 전략이었다. 이마트 월계점은 ‘동네 장사’를 한다. 반경 3㎞ 이내 거주자가 주된 소비자다. 인근에 홈플러스 코스트코 등이 있어 멀리서 이마트를 방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트레이더스는 다르다. 광역 상권으로 분류하는 5~7㎞ 떨어진 곳에서도 일부러 찾아온다. 이마트는 트레이더스를 옆에 붙여 ‘원거리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이 전략은 성과를 내고 있다. 트레이더스가 생기기 전 이마트 월계점 방문객의 61%는 반경 3㎞ 이내에서 왔다. 트레이더스가 문을 연 지 한 달이 지나자 이 비중은 49%로 떨어졌다. 대신 멀리서 온 사람들이 늘었다. 7㎞ 이상 떨어진 곳에서 온 사람도 16%나 됐다. 이마트 전체 방문자도 트레이더스가 생긴 뒤 늘었다. 트레이더스 방문객의 약 56%가 이마트에도 간 것으로 집계됐다. 트레이더스와 이마트의 매출 합계(3월 14일~5월 16일 기준)는 기존 이마트 매출의 2.2배로 늘었다.
패션 코너는 마트 아닌 백화점처럼
이마트 매장 가운데 패션 코너는 사실상 죽어가는 공간이었다. 옷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트 패션 매장은 저렴한 상품을 판매하는 게 일반적이다. 장 보러 왔다가 잠시 들르는 주부 소비자가 타깃이었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온라인몰이 빠르게 확산되자 매출이 급격히 떨어졌다. “패션 매장을 아예 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이마트 경영진은 정반대 결정을 했다. 패션을 대폭 강화키로 한 것.
이마트는 최근 1년 새 8개 매장의 패션 코너 인테리어를 확 바꿨다. 은평 가양 분당 진주 창원 등을 순차적으로 리모델링했다. 백화점처럼 브랜드별로 매장을 구분하고 인테리어도 고급스럽게 했다. 브랜드도 다양화했다. 탑텐 스파오 등 기존 마트에 없던 SPA 브랜드를 유치했다. 레노마 JDX 헤드 등 백화점에 있는 중가 브랜드도 입점시켰다.
매장이 바뀌자 매출이 늘었다. 8개 패션매장 매출은 전년 대비 6.3% 증가했다. 방문객 수는 10% 이상 늘었다. 뜻밖의 소득도 있었다. 마트를 잘 찾지 않던 젊은 층이 많아졌다. 30대 이하 매출 비중이 기존 21%에서 27%로 높아졌다.
같은 상품 아닌 연관 상품별 배치
이마트는 ‘조닝(zoning)’도 하나씩 파괴하고 있다. 술은 술 코너에서, 고기는 고기 코너에서 파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건어물 매대 앞에는 와인 코너를 배치했다. 아스파라거스, 고수 등 특수 채소 옆에는 축산 제품을 팔게 했다. 연관 상품들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같이 사면 좋은 것을 함께 뒀다.
기존에는 맥주 옆에는 와인이 있어야 했다. 소비자가 주류를 산 뒤 안주를 고르기 위해 멀리 돌아가면 중간에 다른 상품도 살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소비자가 아닌, ‘공급자 중심’의 진열이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매대 위치를 조금만 바꿔도 매출 차이가 커 공급사와 바이어의 저항이 있었다. 하지만 위기를 돌파하려면 공급자 중심의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설득해 기존 공식을 깨기로 했다”고 전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원문보기: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19052974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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