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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사] [요청기고-최학림] 북·미 대화 1년, 한반도 평화 오고 있는가

Jacob, Kim 2019. 6. 11. 21:13







2019년 6월 11일자





[칼럼 전문]





반도국 이탈리아, 50년 걸쳐 통일

남북도 역사적 전망 전략 갖춰야

베트남 노딜 후 북·미 협상 교착 상태

미국 ‘현 상황 그대로’ 기조 유지 중

이 판 흔들 제3의 힘·호기가 있어야

4차 남북 정상회담이 물꼬 트기를





어떤 일이든지 한꺼번에 되는 일은 없다. 그래서 역사적 시각이 필요하다. 우리 삶도 그렇지만 역사적 시각의 요체는 그 90%가 ‘견디면서 밀고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기 위한 고통의 과정이다. 오늘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1돌을 맞는 날이다. 평화를 향한 한반도 상황이 엄중하고 무겁다. 동북아 3국 중 우리만이 남북한으로 찢어져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경제 대국 1~3위(미·중·일)의 자장 속에 매우 복잡하게 놓여 있다.


우리를 복잡하게 하는 것으로 해묵은 보수-진보의 갈등도 뺄 수 없다. 왜 우리는 이렇게 복잡한가. 혈기 방장한 반도적 기질, 온갖 장력이 작용하는 반도적 위치 때문이지 않을까. 유럽의 반도 국가인 이탈리아도 복잡했다.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과정은 지난했는데 그것은 50년 넘게 걸렸다. 내부의 이견과 외세의 작용 때문이었다. 한반도가 견뎌야 하는 ‘50년’이 있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 것일까.

우선 내부의 이견, 보수-진보의 대결은 반도에서는 종속변수라고 쳐보자. 반도는 외세의 작용을 크게 받는 위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세기 이탈리아가 그랬고, 우리의 현재가 그렇다. 지금 한반도 평화의 체스 판에서 가장 주도적인 말(馬)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최강국 미국이다. 미국은 베트남 노딜 판을 만든 뒤, 한반도를 현 상황대로 ‘묘하게’ 관리하고 있다. 미국의 목적은 한반도 현상 유지일 수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정치적 목표는 한반도 평화가 아니라 대통령 재선이다.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프랑스는 ‘묘하게’ 이율배반적으로 움직였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프랑스는 처음에 이탈리아를 도와 합스부르크 왕조의 오스트리아를 물리쳤다. 그런데 이탈리아가 득세하자 프랑스는 변심했다. ‘통일 이탈리아는 우리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다’고 판단한 프랑스는 다시 오스트리아와 강화를 맺었다.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는 인류사의 통속은 차가운 현실이다. 미국도 이 철리 위에서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면 프랑스가 변심했을 때 이탈리아는 첫째 프랑스와 다투던 프로이센을 끌어들였고, 둘째 가리발디가 딴청 피우던 남부 이탈리아를 장악하는 호기를 맞았다. 그것이 프랑스 방해를 뚫고 이탈리아가 통일을 이룬 지점이다.

핵심은 이렇다. 제3의 힘과 절호의 호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어떤가. ‘이탈리아의 프로이센’ 같은 제3의 힘으로 중국 러시아 일본 중 어디를 꼽을 수 있을까. 러시아는 다소 멀리 떨어져 있고, 일본은 미국의 종속변수에 가깝다. 중국이 제3의 힘의 가장 유력한 후보다. 중국도 미국처럼 한반도의 분단 체제가 내심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변수가 있다. 미국과 중국은 지금 험악한 경제전쟁을 펼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둘의 경제전쟁은 미국의 완승으로 끝날 것’이라고 말하지만 둘의 각축이 거세질 때 필요한 완충 지점이 ‘한반도 평화’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운명은 세계사적 판도 속에서 하나의 패에 불과한 셈이다. 그래도 그 패를 우리는 들여다보고 있다가 결정적으로 잡게 해야 한다.

제3의 힘이 외부의 작용이라면 호기는 한반도 스스로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베트남식의 경제 번영 길로 나가고 싶어 하는 북한이 결심해야 할 바도 분명히 있다. ‘영변 핵 폐기’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북한 내의 매파를 제압하면서 미국을 유인할 수 있는 ‘플러스 알파’의 비핵화 로드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트럼프가 절묘한 재선 카드로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방법이다. 그러면 거래의 달인도 쌩큐 라고 할 것이다.

남한은 교착하고 있는 북·미 협상 판을 적극 거중 조정해야 한다. ‘오지랖 넓은 중재자’라는 것은 팔짱 끼고 있었다는 비난일 수 있다.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할 수 없겠으나 창의적 대안을 내놔야 한다. 북·미 교착과 유엔 제재의 틈을 찾아야 한다. 엊그제 핀란드 니니스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몹시도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정확한 말이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조만간 남북, 북·미 대화가 재개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믿는다’는 말은 ‘추진하고 있다’는 뜻일 게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올 하반기 미·중 경제전쟁이 악화 일로로 치달을 때, 재선 가도의 트럼프가 답답해하고 있을 때 북한의 추가 비핵화 로드맵 발표와 4차 남북 정상회담이 연계해서 이뤄지는 것이다. 가리발디처럼 점령한 남부를 통일 대의를 위해 내놓은 통 큰 결단과 미국을 끌어들일 수 있는 지략이 지금 필요하다. 남한의 지혜와 북한의 의지, 미국의 용인, 이것이 절묘히 맞물려야 한다. 작고한 이희호 여사가 2015년 방북 뒤 말한 것이다. “다음 세대에 분단의 아픔을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




/최학림 논설실장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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