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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국과 중국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까

Jacob, Kim 2019. 6. 24.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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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1일자





[칼럼 전문]





사흘 뒤면 6·25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69년 전 이날 남북은 동족상잔의 전쟁에 빠져들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대립이 한반도에서 폭발했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수많은 목숨이 스러졌다. 남북은 이후에도 군사적 대치를 유지하며 세계사에 유례없는 ‘장기간 휴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 신기록은 지금 이 순간에도 경신되고 있다.

6·25전쟁은 냉전 시기 미국과 중국이 맞붙은 전쟁이기도 했다. 미국은 유엔군의 옷을 입고, 중국은 인민지원군의 모자를 쓰고 참전했다. 그때만 해도 미국은 남한의 동맹이 아니었고 중국 또한 북한의 혈맹이 아니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이 격화하면서 신냉전이 도래했다는 말까지 도는 요즘, 두 나라가 전쟁을 치른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그저 회고가 아니다.

중국은 6·25전쟁에서 승리한 기억을 끌어낸다. 미국이 지난달 15일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자 중국은 이틀 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영화 채널을 통해 <상감령 전투>라는 영화를 내보냈다. 강원도 철원군 오성산 남쪽 저격능선과 삼각고지 사이에 있는 상감령은 중국군이 미군과 피 튀기는 전투를 벌인 곳이다. 백마고지와 함께 당시 처절했던 고지전을 상징한다. 중국은 이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상감령 정신’이라고 칭송한다.

상감령 정신은 ‘불요불굴의 의지로 완강하게 싸워 끝내 승리를 쟁취하는 것’을 가리킨다. 1956년 당시 마오쩌둥 주석의 지시로 영화화되면서 전투정신의 표본으로 자리잡았다. 화웨이 창업자인 런정페이도 최근 “내년에 뛰어난 인재들이 배출된다면 그들을 이끌고 상감령을 향해 진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영화의 주제가에는 “친구가 오면 좋은 술로 대접하고, 승냥이가 오면 사냥총으로 맞아주겠다”라는 가사가 들어 있다. 승냥이는 물론 미국을 가리킨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이 결국 무력충돌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 이론이 대표적이다. 그리스의 투키디데스가 기원전 5세기에 일어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을 기록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비롯한 논리다. 투키디데스는 책에서 “아테네가 성장하고 스파르타가 이를 두려워하면서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아테네를 중국으로, 스파르타를 미국으로 바꾸면 이 논리의 현재적 의미가 선명해진다.

미국은 최근 공개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중국을 현상유지를 타파하려는 국가로 규정했다. 대만을 국가로 분류해 1979년 중국과 국교를 수립한 이후 견지해오던 ‘하나의 중국’ 원칙을 버릴 수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무역전쟁에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 펼치고 있는 ‘항행의 자유 작전’까지 고려하면 중국을 향한 미국의 압박은 가히 전방위적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몇가지 국제정치학적 가정을 깔고 있다. 세계는 무질서 상태에 놓여 있고, 모든 국가는 군사력을 증강하며, 이때 누구도 상대의 진짜 의도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무력 증강이 주변국의 군비 경쟁으로 이어지는 ‘안보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상대를 압도하는 패권국가가 되어 주변국을 지배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논리를 비웃는 이들 또한 있다. 미국과 중국이 경쟁적 관계에 있는 건 맞지만 두 나라는 오히려 전쟁을 피하려 들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들은 미국과 중국의 상호의존성이 전쟁의 유혹을 물리칠 만큼 강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두 나라가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전략대화를 제도화하고 있다는 점도 이런 지적에 힘을 싣는다. 중국의 군사력이 미국에 맞서기엔 부족하며, 이런 힘의 불균형은 결코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논거로 쓰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평양을 찾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다.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프로세스에 전면적으로 개입할 것임을 알리는 신호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이 이후 협상의 상수로 작동할 것을 예고한다. 이번 회담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조성된 교착 국면에 돌파구를 낸다고 하더라도, 한반도 문제의 해결 과정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한반도로 옮겨오고 있다.






유강문 선임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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