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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지석 칼럼] 다차원 갈등 시대의 ‘강한 외교’

Jacob, Kim 2019. 8. 16. 22:49







2019년 8월 7일자





[칼럼 전문]





일본이 경제전쟁을 계속 밀어붙인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부정하고,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한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 미사일을 우리나라에 배치하려고 한다.
미국이 방위비(주한미군 주둔비) 분담금을 큰 폭으로 늘리라고 한다.
미국이 호르무즈해협 ‘호위 연합체’에 우리나라의 동참을 요구한다.
북한이 한-미 훈련 등에 항의하며 단거리 미사일을 잇달아 쏜다.
중국과 러시아가 동해에서 합동훈련을 벌이고, 러시아 군용기가 우리나라 영공을 침범한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 무역·기술전쟁에 이어 통화전쟁에 돌입한다. 금융시장이 출렁인다.

지금 우리가 한꺼번에 겪고 있는 외교·안보 사안이다. 어느 하나 만만치가 않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깊은 늪에 빠질 수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의 세계사적 전환기(냉전종식기)를 연상시키는 상황이다.

관련국들이 우리나라에만 앙심을 품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모두 우리 못잖은 문제를 안고,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는다.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아베 신조 총리의 정치 자산인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는 전혀 진척되지 않는다. 남쿠릴열도(북방영토) 4개 섬의 영유권 문제도 러시아와 얘기가 잘 통하지 않는다. 대미 관계도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미국은 강한 통상 압박과 더불어 주일미군 주둔비의 대폭 증액을 요구한다. 동북아 현안에서 일본의 발언권이 줄어드는 양상도 뚜렷하다. 아베가 섣부르게 한국 때리기에 나선 배경에는 공세적 측면과 더불어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초조감이 있다.

복잡해 보이는 다차원 갈등 시대지만, 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크게 두가지 뿌리에 닿는다. 미-중 대결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그것이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 우선주의가 만들어내는 강한 마찰은 동아시아 전체의 모습을 재규정하며 여러 난제를 만들어낸다. 냉전 종식 시기와 달리 우열과 승패가 분명하지 않아 더 그렇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그 속에서 핵 문제 해결과 평화구조 정착을 꾀한다. 이 힘이 세지면 동북아 전역에서 대결을 상쇄하는 새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런 때일수록 원칙이 중요하다. 유연한 접근도 확고한 원칙이 전제돼야 효과가 있다. 원칙은 크게 둘이다. 평화와 역량 강화가 그것이다. 동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기여하며 우리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그 정도의 힘과 자율성은 우리에게 있다.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을 우리 땅에 배치해선 안 된다. 미-중 대결을 심화하고 우리나라가 분쟁지역이 될 것이 분명해서다. 동북아 대결 구조에 한-미 동맹을 활용하는 것은 동맹 정신의 이탈이다.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 역시 미-중 대결의 수단이 아니라 평화의 주춧돌이 돼야 한다.

호르무즈해협 파병도 신중해야 한다. 호르무즈해협 대치는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핵협정 탈퇴의 결과다. 미국과 이란 사이 긴장 고조는 전쟁의 전주곡이다. 미국 주도 호위 연합체에 대한 참여는 핵협정 탈퇴와 전쟁에 찬성하는 것과 같다. 꼭 필요하다면 우리 병력으로 우리 선박을 지키면 된다.

영공 침범에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터키는 2015년 11월 시리아 접경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자국으로 들어온 러시아 전폭기를 격추한 바 있다. 미국·일본과 중국·러시아의 대결이 아무리 확장되더라도 우리 영토가 무대가 돼선 안 된다. 한반도는 대결 구조의 약한 고리가 아니라 건드려서는 안 되는 곳임을 각인시켜야 한다.

북한과 관련해선 평화프로세스의 실질적 이행 방안을 찾고 실천해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비핵화 협상이 진전될 수 있게 북한과 미국의 결단을 끌어내려면 남다른 창의성과 결단이 필요하다. 내년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향적 태도는 필수다.

최대 현안인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선 차분하게 큰 흐름을 만들어가는 자세가 기본이다. 국제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면서 우리 역량을 내실 있게 강화해야 한다. 지금까지 대체로 잘하고 있지만, 좀 더 집중력 있고 탄력성 강한 경제구조 구축이 요구된다.

강한 외교가 필요한 때다. 평화와 공동번영의 길이 넓어지고 우리 역량이 커지는 게 강한 외교다. 우리가 먼저 중심을 잡으면 다른 나라도 그에 맞춰간다. 거꾸로 우리가 눈치를 보면 다른 나라는 더 심하게 흔들려고 할 것이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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