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1945/독일-폴란드 분리선

[경향신문] 80년 지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폴란드 ‘과거사 전쟁’

Jacob, Kim 2019. 9. 8. 18:51








2019년 9월 2일자





[기사 전문]





ㆍ2차 세계대전 추모식서 독일은 다시 사과…러시아는 도발
ㆍ그단스크 추모공원 관할·박물관 동영상 등 국내 싸움 번져





1939년 9월1일 새벽. 독일 전함이 폴란드의 단치히(지금의 그단스크)에 있는 베스테르플라테반도를 공격했다. 동시에 폴란드 소도시 비엘룬에도 독일군 공습이 쏟아졌다.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그 후 80년이 지났으나, ‘기억의 전쟁’은 폴란드 안팎에서 계속되고 있다.

1일(현지시간) 폴란드 중부 비엘룬에서 2차 대전 80주년 추모식이 열렸다. 80년 전 폭격이 개시된 시간인 오전 4시40분에 시작된 추모식에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독일어와 폴란드어로 “독일에 희생된 폴란드인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2차 대전 기간에 폴란드에서는 유대인 300만명을 포함해 600만명이 숨졌다. 추모식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등이 참석했다.




독일은 1970년 바르샤바에서 무릎을 꿇은 빌리 브란트 총리의 사죄를 비롯해 여러 차례에 걸쳐 사과를 했고 배상도 했다. 하지만 유럽의 정치지형도가 복잡해지면서 과거사를 둘러싼 싸움은 다시 가열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폴란드의 주된 상대는 독일이 아닌 러시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09년 그단스크의 70주년 추모식에 왔고 2014년 프랑스에서 열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했다. 그런데 이번에 폴란드는 푸틴 대통령을 초대하지도 않았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뒤 러시아와 유럽 관계는 냉각됐으며 폴란드는 특히 러시아를 경계한다. 2015년 집권한 폴란드 우파 법과정의당(PiS)과 푸틴 정권은 각기 자국 내 극우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80주년에 앞서 찬물을 끼얹은 것은 러시아였다. 러시아 외교부는 “폴란드가 소련군의 진입을 막은 탓에 전쟁 피해가 커졌다”는 내용의 동영상을 트위터에 올렸고 소셜미디어에서 ‘2차 대전의 진실’이라는 캠페인까지 벌였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러시아판 수정주의 역사관”이라고 지적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추모식 연설에서 소련군이 폴란드군 2만2000명을 처형한 사실과 1940년 소련군이 저지른 ‘카틴 숲 학살사건’ 등을 거론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그는 “오늘날 유럽에 제국주의 경향성이 다시 나타나 무력으로 다른 나라 땅을 차지하고 국경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했다.




폴란드 안에서도 과거사 싸움은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법원에 소송을 내면서 그단스크 시정부가 관리하던 2차 대전 추모공원을 중앙정부 관할로 바꿨다. 2017년에는 “애국적 열정이 부족하고 반폴란드적”이라며 역사박물관 관장을 교체했다. 새 관장은 박물관 입구의 유대인 희생자 사진들을 없애고 유대인들을 보호해준 폴란드인 가족의 사진으로 바꿨다. 가장 큰 논란거리는 관람객들에게 보여주는 4분짜리 동영상이다. 우크라이나와 시리아의 난민들을 보여주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했던 부분은 사라졌고 폴란드 군인들의 영웅적 활동을 그린 컴퓨터그래픽 영상으로 대체됐다.

정부는 그단스크에 아예 새 역사박물관을 지을 계획이지만, 야당 소속인 알렉산드라 둘키에비츠 시장은 불투명한 절차에 반발하고 있다고 현지 방송 TVN24 등은 전했다.

법과정의당은 폴란드의 자유화를 앞당긴 1980년대 말 그단스크의 솔리다르노시치(연대) 노조 운동을 폄하하며 이데올로기 공세를 벌이기도 했다.





구정은 선임기자 ttalgi21@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9022140035&code=97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