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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정동칼럼]9·19 남북군사합의를 넘어

Jacob, Kim 2019. 10. 10. 19:31







2019년 10월 6일자





[칼럼 전문]





강사 : 한설 예비역 육군준장·순천대 초빙교수





9·19 남북군사합의는 남북 최초의 군비통제 합의라는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서명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동력을 상실하고 있다. 기대와 달리 9·19 남북군사합의에 이어 실질적인 조치가 이어지지 않는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다단한 안보상황 때문이다. 남북군비통제는 남북 간 의지뿐만 아니라 주변의 안보위협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북한은 9·19 남북군사합의 서명 이후 우리의 첨단 군사력 건설을 비난하면서 더 이상의 실질적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문제는 북한이 남한의 첨단 전력강화를 9·19 군사합의 정신을 위반한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 주변 안보환경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영향력의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남북군비통제만 고려할 수 있는 여유 있는 처지가 아니다. 북한은 우리 군의 첨단 군사력 건설을 자신들에 대한 위협으로만 인식할 것이 아니라 남북이 공동으로 직면하고 있는 안보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같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 군이 국방개혁을 통해 해군·공군 위주의 첨단전력을 강화하려는 것은 주변 안보 상황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이다. 과거 우리 군 책임자들은 첨단무기로 북한의 핵위협을 제거해야 한다며 3축체제 도입을 주장했다. 군사전략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3축체제로 핵무기를 상대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아무리 첨단전력이라도 핵무기를 상대할 수 없다. 3축체제를 구축해서 북한의 핵무기에 맞선다는 것은 처음부터 틀린 말이다.

최근 중국은 자신들의 육지가 넓고 인구가 많기 때문에 서해에서 한국보다 더 많은 바다를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중간선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 국제적인 해양경계획정의 기준을 무시하고 있다. 중국은 말로만 그치지 않고 군함을 동원하여 힘으로 자신들이 주장하는 경계선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동해안으로 정보함을 보내 우리의 군사정보를 탐지하고 있으며, 정찰기를 보내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 군항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하고 일본이 우리 해군 함정을 위협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최근에는 국방백서를 통해 앞으로 독도에 군항기를 투입할 것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 군이 첨단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자위적 조치이다. 지금 우리 군은 북한보다 훨씬 까다롭고 강력한 군사적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

만일 우리 군이 중국의 강력한 군사력에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군사력을 갖추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길 것인가? 우리는 중국이 요구하는 해상경계선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고 이는 북한과 중국의 해상경계선 획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남한이 밀리면 북한도 밀리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 점에서 이미 남북은 공동의 이익을 지니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는 동해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우리의 이런 자위적 조치가 자신들에게도 직접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북한이 우리 군의 첨단전력강화를 9·19 군사합의정신에 위배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국민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잠수함 건설을 남북군비통제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상호 비난만 하면 남북의 평화는 요원하다.

남북 공히 남북관계의 긴장완화 노력과 주변 안보위협에 대한 대응을 정치하게 분리해낼 수 있는 냉철한 현실 인식능력을 필요로 한다. 남북 간 군비통제 노력을 통해 평화를 구조화하고 제도화하는 하는 한편 주변 안보위협에 대해서는 공동 이익을 모색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북한은 우리 군의 첨단 전력도입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에 앞서, 한반도 전체의 이익을 위해 남북이 무엇을 어떻게 협조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남북 군비통제 노력과 점증하는 안보위협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은 남북이 같이 해결해야 할 숙제다. 남북이 평화를 구축하고 주변의 안보상황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협조체제를 구축하지 못하면 한반도는 강대국 사이에서 미아가 되어버린 19세기의 운명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냉전적 상황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남북 공히 냉전적 사고방식을 뛰어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설 예비역 육군준장·순천대 초빙교수]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0062037025&code=99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