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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한겨레] [아침햇발] 무관중 남북축구 이후 / 박병수

Jacob, Kim 2019. 10. 27. 01:32







2019년 10월 22일자





[기사 전문]





무관중 축구경기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찾아보니, 국제경기에서도 몇 차례 있었고 유럽 프로리그에서도 종종 벌어진 일이었다. 국내 케이(K)리그에서도 2012년 6월 인천과 포항이 인천구장에서 관중을 입장시키지 않고 경기를 했다. 앞서 인천구장에서 경기 중 팬들 간 폭력 사태가 발생하자 프로축구연맹이 홈팀인 인천에 경기장 안전관리의 책임을 물어 ‘무관중 경기’ 징계를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번 평양 남북축구처럼 징계가 아닌 자발적 무관중 경기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사실 무관중 경기는 관중 입장 수익과 홈팬의 일방적 응원을 포기하는 것이어서, 홈팀엔 굳이 그런 선택을 할 유인이 없다.

북한이 이번에 ‘무중계’도 모자라 ‘무관중’까지 강행한 것은 그래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월드컵 지역예선의 ‘홈 앤드 어웨이’ 경기 방식에 따라 내년 6월엔 서울에서 남북축구가 열리는데, 그땐 형평성 차원에서 우리도 무관중 경기를 해야 하는 건가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해봤다. 극도로 경색된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남북 당국 간 대화 단절과 대립이 길어지고 있다. 북한은 지난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한과 마주 앉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북한의 행동을 아주 이해 못 할 건 없다. 북한이 요구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무시되고 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건 없는 재개’를 제안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감감무소식이니, 어찌 심기가 불편하지 않겠는가. 남한이 북-미 관계의 중재자 구실을 자처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선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울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도 북한의 행보는 성급하고 일방적이다. 유엔 제재가 엄연한 상황에서 남한이 움직이긴 쉽지 않다. 오히려 남한이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북한이 나서서 해야 할 일 아닐까. 북한이 무턱대고 남한을 압박해서 얻어낼 것은 별로 없다. 어렵더라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제하면서 함께 발맞춰가며 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은 남북이 만나 함께 해법을 모색하는 게 더 적절한 시점이다.

지난해 초 북한이 돌연 대화로 나오면서 김 위원장의 젊은 리더십에 대한 기대가 컸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달라진 게 없다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특히 대남 성명이나 보도에서 욕설이나 다름없는 험한 말까지 동원하는 것을 보면 갑갑해진다. 김정일 위원장 시대에 하던 행태를 아직도 반복하는데, 새로운 리더십이라니 객쩍은 소리다.

누구라도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글을 쓸 땐 어떻게 하면 설득력을 높일까 고민한다. 하물며 국가의 공식 입장을 담는 성명은 더 말해 무엇할까. 그러나 요즘 북한의 성명이나 언론 매체의 논평도 그런지엔 물음표를 달게 된다. 글은 무엇보다 독자의 언어로 독자의 정서에 직접 호소해야 먹히는 법이다. 당연히 욕설과 같이 거친 말은 설 자리가 별로 없다.

그래서 북한의 거친 성명을 보면, 굳이 남한 당국에 이렇게 적개심을 공공연하게 표출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진다. 성명이 내부 결속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엔 격한 표현이 나올 수 있지만, 그것도 정도의 문제다. 그래서 북한 내부의 절대 권력자에게 충성심을 입증하기 위한 수단으로 거친 표현을 마다하지 않는 건 아닐까 의심스럽다.

적대감은 두려움의 또 다른 표현이고 두려움은 무지와 오해의 소산이라고 한다. 무조건 만나야 한다. 그래야 이해의 폭을 넓히고 두려움도 적개심도 줄일 수 있다. 이런저런 조건을 걸고 문을 닫고 있으면 기회는 점점 더 멀어질 뿐이다.

이달 초 북-미 실무협상 결렬 이후 한반도 정세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북한은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갖고 와야 한다”고 되뇌지만 미국은 양보할 기색이 아니다. 북한은 “올 연말까지 기다리겠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을 재확인했다. 이대로 상황 변화가 없으면 내년엔 어떻게 되는 걸까. 다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난무하는 위험스러운 대결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일까. 걱정이 앞선다.







박병수

논설위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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