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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동·서독 ‘보이지 않는 벽’ 여전… 격차 해소 반세기 걸릴 수도”

Jacob, Kim 2019. 11. 12. 23:01







2019년 11월 10일자





[기사 전문]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 메르켈 “자유를 제약하는 장벽 / 두껍고 높아도 결국엔 뚫린다” / 슈타인마이어 “美 동반자 돼야” / 자국 우선주의 트럼프에 비판적 / 동독 1인당 GDP 서독 75% 그쳐 / 평균임금·생활비용 등도 격차 커 / 주한 독일 대사 “머지않은 미래에 / 한국도 통일·자유 기릴 수 있기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9일(현지시간)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장벽 붕괴 기념일은 행복한 순간의 기억이지만, 한편으로 현재 마주하고 있는 증오와 인종차별, 반유대주의에 맞서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세 확장 등 극단주의의 급부상이 통합을 가로막는 최대 위협이라는 인식을 내비친 셈이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장벽의 붕괴는 자유를 제약하고 사람들을 못 들어가게 하는 벽이 너무 높고 두껍더라도 결국 뚫린다는 가르침을 준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유럽은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 관용을 지켜내야 한다”면서 “이런 가치는 항상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은 30년 전 동독 사회주의통일당(공산당) 선전담당 비서가 TV 회견을 통해 “서독으로 상시 왕래가 허용될 방침”이라고 밝히자 동독 주민들이 장벽에 몰려들면서 갑자기 문이 활짝 열린 날로, 이듬해 독일 통일의 도화선이 됐다. 메르켈 총리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뿐 아니라 체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이탈리아 등 주변국 정상들도 참석해 장벽을 넘어 탈출하려다 숨진 동독 시민들을 함께 추모하고 장벽 붕괴 30주년의 의미를 되새겼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동유럽에서 평화혁명을 이뤄낸 폴란드와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의 자유에 대한 의지와 용기가 없었다면 독일 통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미국이 국가 이기주의에 맞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한 존중받는 동반자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1987년 6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서베를린을 찾아 “장벽을 무너뜨리자”고 연설했던 것을 언급하며 “이 외침을 여전히 듣고 있다”고 했다. 전날 미 대사관저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레이건 전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졌다.

이날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의 기념사에는 국제 질서 유지의 동반자이자 자유주의 수호의 중심이었던 미국을 향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이슬람국가(IS)’ 격퇴전 동맹이었던 쿠르드족과 상의 없이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하는 등 자국 우선주의 노선을 택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유럽의 비판적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전날 메르켈 총리도 “미국과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독일 통일의 길을 도왔다. 우리는 이것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이름은 거론하지 않았다.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을 ‘상업적인 대상’으로 본다”며 “미국이 전략적인 이슈들에 대해 우리(유럽)에게 빠르게 등을 돌리고 있고, 어떤 식의 전략적 의사 결정이 이뤄지든 간에 미국과 다른 동맹국 사이에 사전 조정이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시민단체에서도 멕시코 접경에 ‘이민 장벽’을 건설하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독일의 비영리단체 ‘열린사회 이니셔티브’는 이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남은 콘크리트 덩어리 일부를 트럼프 대통령에 보냈지만 백악관이 수령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장벽 표면에는 ‘베를린 시민’ 명의로 “장벽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미국이 헌신해온 사실을 당신께 일깨우려 이 조각을 보내드린다”라는 내용이 새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주 베를린에서만 혐오 배제, 화합, 자유의 가치를 내세운 200여 관련 행사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동·서 간에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슈테펜 마우 베를린 훔볼트대 사회학 교수는 “독일의 동·서는 많은 부분에서 그 차이가 좁혀지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동독 출신 독일인들이 자신을 ‘2등 시민’으로 느낀다”고 지적했다.








CNN에 따르면 통일 직후인 1991년 옛 서독지역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2687유로의 약 43%에 불과했던 동독지역 1인당 GDP(9701유로)는 그동안 상당 폭 증가했으나, 2018년 현재에도 여전히 서독지역 1인당 GDP(4만2971유로)의 75%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기준 양쪽의 연평균 임금 차도 1만유로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으며, 한 달 평균 생활비 격차도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옛 동독과 서독 지역 간 격차 해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격차를 해소하는 데 반세기가 더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분단국인 한국에는 베를린 장벽 붕괴가 특별한 의미일 수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이날 보도했다. WP는 베를린에서 8000㎞ 떨어진 서울 이태원에서 장벽 붕괴 기념 파티가 열렸다고 소개하며, 이는 독일 통일 사례로부터 교훈을 찾으려는 분위기라고 해석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대사는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 역시 통일과 자유를 기릴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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