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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글로벌포커스] 여전히 휴화산 기슭인 한국

Jacob, Kim 2019. 12. 5. 00:08







2019년 11월 12일자





[칼럼 전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칼럼 연속기고(6)





1990년대 말까지 북한에 대한 분석도, 대북 정책도 5~10년 이내에 북한이 무너진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었다. 거의 모든 학자와 전문가 대부분은 당시에 북한이 곧 무너질 줄 알았다.

하지만 북한은 대기근을 비롯한 심각한 체제 위기에도 살아남았다. 붕괴론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점점 힘을 잃어 갔는데, 2008년 김정일의 건강 악화 이후 얼마 동안 다시 인기를 끌었지만, 몇 년 만에 다시 무너져 버렸다.

이제 북한은 그저 위기에서 살아남은 나라가 아니라,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까지 성공한 나라가 됐다. 그 때문에 옛날 붕괴론자 대다수는 오늘날 그 시나리오를 거의 거론하지 않는다. 1990년대와 비교하면, 오늘날은 '북한 비(非)붕괴론'이 지배하는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태도 변화는 한편으로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편으로 문제가 없지 않다.

지금 북한이 무너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그 가능성 자체는 여전히 존재하며, 만약 발생한다면 한반도와 동북아는 대혼란에 직면하게 될 뿐만 아니라 폭력도 많이 생길 것이다. 또한 붕괴가 유발할 흡수통일은 전 한반도를 20~30년간 '고난의 행군'에 빠뜨릴 것이 확실하다.

북한 문제의 전망을 생각해 보면, 한국은 휴화산의 기슭에 위치한 도시에 비유할 수 있다. 휴화산은 계속 조용히 있을 수도 있지만, 폼페이와 같이 어느 날 화산은 폭발해서 시민들을 덮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휴화산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분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계속 기억해야 하며, 지역 당국자들은 화산이 분출할 때를 대비한 비상조치를 잘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시청이나 도쿄 도청은 지진 대비 계획을 잘 준비하고 있는데, 시장이나 도지사가 지진이 생기기를 희망하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최근에 한국에서는 북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 진보파는 작년 봄부터 약 1년간 맹위를 떨쳤던 낙관주의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들은 여전히 희망과 꿈이 많은 동북아를 운운하고 있다. 진보파는 휴화산이 폭발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는 느낌이다. 또한 그들은 붕괴론에도, 북한 붕괴를 대비하자는 주장에도 여전히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보수파는 북한 붕괴에 대한 희망을 요즘에 거의 완전히 포기한 느낌이다. 몇 년 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통일대박을 주장하며 흡수통일에 의욕을 보였는데, 물론 근거 없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요즘에 보수파는 흡수통일도, 흡수통일과 직결되는 북한 붕괴에 대해서도 우려감과 공포심이 많아졌다. 문제는 그 때문에 북한 붕괴, 혹은 급변사태 대책에 대한 보수파의 열망과 관심이 많이 약해졌다.

그러나 머지않은 미래에 '북한 붕괴'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생길지도 모른다. 최근에 북한 당국자들은 미국 측이 연말까지 북한이 요구하는 양보를 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길'로 가겠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것은 거의 확실히 북한 측이 ICBM 발사 혹은 핵실험을 내년 초 이후 할 수 있다는 암시다. 그렇다면 동북아의 상황은 다시 2017년 초와 비슷해질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미·북 타협과 대북 제재 완화의 가능성도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 대북 제재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유지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그렇다면 북한 경제는 2012년 이후 몇 년 동안 보여준 괜찮은 성장 대신에 심한 침체에 함몰돼 버릴 수 있다. 시장화 촉진 개혁에 대한 김정은 정권의 의지가 지난 1~2년 동안 약해졌다는 조짐도 많이 보인다. 이를 감안하면, 북한 경제가 침체 또는 마이너스 성장에 빠질 확률은 더욱 높다.

물론 중기적으로 북한은 중국의 조용한 지원 덕분에 체제 유지가 가능하다. 하지만 경제 성장이 없다면, 북한과 같은 국가도 장기적인 체제 유지가 어렵다. 그 때문에 우리는 '북한 붕괴론'을 흘러간 옛날 라디오 테이프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원문보기: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19/11/932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