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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한경TV] <포럼>안보 脫美聯中(탈미연중) 우려 키운 韓中日회의

Jacob, Kim 2020. 1. 8. 00:27







2019년 12월 26일자





[칼럼 전문]





한·중·일 3국 정상이 지난 23∼24일 중국 청두(成都)에서 만났다. 동북아에서 인접국 정상이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익숙해지면 서로를 얕본다’(Familiarity breeds contempt)는 영어 속담처럼,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외려 서로를 무시하고 오해하는 일도 많다.

한·중·일 정상회의는 미국을 빼고 열린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미국이 포함된 지정학(地政學)보다 3국의 경제협력을 지향하는 지경학(地經學)이 우위를 점한다. 그러나 지정학과 지경학이 완벽히 분리될 수 없기에 각자 3국 협력의 지정학적 여파를 잘 고려해야 한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을 미국으로부터 분리시켜 한·미·일 안보 협력이 북한을 넘어 중국을 향하게 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

한국과 일본 입장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은 미국에 대한 ‘연성균형(soft-balancing)’ 장치다. 양국 모두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지만, 미국이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도록 중국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 나름의 균형을 잡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 안보동맹을 맺는 게 아니라, 경제·문화 교류와 협력 등을 통해 미국에 지리적 거리가 가지는 ‘한계’를 각인시키는 것이다. 이번 한·중·일 정상회의에 앞서 3국 경제인들이 ‘비즈니스 서밋’ 행사를 열고, 정상회담에서 한·중·일 FTA가 논의된 것은 안보 문제와 별도로 3국 경제 협력의 비전을 공유하는 기회였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북핵(北核) 문제 같은 안보 사안에 관해서는 미국의 의심을 살 수 있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 2018년 10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경제인 500명을 이끌고 7년 만에 방중해 일·중 정상회담을 했을 때도 안보 문제는 의제에 올리지 않고 제3국에서의 인프라 협력, 즉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 일본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하는 데 국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일 통상 압박에 대한 일종의 연성균형이었다. 이번 일·중 정상회담도 이러한 패턴을 벗어나지 않았다. 안보 문제는 철저하게 미국과 상의하고 공조한다.

반면, 한·중 관계는 다르다. 지난 23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미·북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경제’를 강조한 것은 너무나 공허하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한 것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이 결의안에 대해 저희도 주목하고 있다. 다양한 국제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말은 대북 제재 완화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대북 안전보장,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 등은 가능하나 대북 제재는 완화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입장과 배치된다. 한국이 오히려 북·중·러 진영의 대미 압박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안보 문제를 ‘탈미연중(脫美聯中)’으로 가게 되면 한국 외교안보의 중심축이 흔들리게 된다.

15개월 만에 열린 한·일 정상회담은 일본의 수출 규제와 지소미아(GSOMIA) 유예 조치를 함께 해결하는 ‘빅딜’은 없었지만 양 정상이 “대화를 통해 풀자”고 함으로써 실타래처럼 엉킨 양국 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강제징용 문제가 관건이나, 북한 문제의 엄중함을 고려할 때 역사문제 때문에 한·일 및 한·미·일 안보 협력을 등한시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말로는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북·중·러 연합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2020년 한반도에 진정한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前 외교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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