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1945/통일과 현대의 독일

[한겨레] 죽음의 공간이 생태 관광지로…독일은 해냈다

Jacob, Kim 2020. 1. 22. 01:34







2019년 11월 3일자





[기사 전문]




‘그뤼네스반트’ DMZ 모델로 거론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 토대
민관 참여 개발·보존 갈등 줄여






한반도 비무장지대(DMZ)의 미래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접경지역 사례로는 독일의 ‘그뤼네스반트’(녹색 띠)가 대표적이다. 30여년 동안 동·서독이 대립한 옛 국경인 ‘철의 장막’이 자연보전과 생태·역사 관광지로 탈바꿈해 독일을 넘어 유럽의 그린벨트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뤼네스반트는 길이 1393㎞, 폭 50~200m, 면적 177㎢로 9개 주 정부를 통과하며, 1개 국립공원, 3개 생물권보전지역, 136개 자연보전지역에 걸쳐 있다. 이 녹색 띠 일대에는 약 5200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600종 이상이 멸종위기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냉전과 죽음의 공간이었던 분단 현장이 화합과 생명의 상징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72년 ‘동·서독 관계 기본조약’이 있다. 이 조약을 맺은 뒤, 동·서독은 이듬해 ‘접경위원회’를 설치해 수자원, 에너지, 자연재해 방지 등 협력에 나섰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면서 ‘죽음의 지대’였던 군사분계선은 본격적으로 ‘평화의 녹색 띠’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독일은 생태의 보고로 바뀐 국경지대를 보전하기 위해 그뤼네스반트 사업을 벌였다. 환경단체인 분트(BUND)가 정부 지원을 받아 이 사업과 관련한 운동을 주도했다. 민관이 함께 운동에 참여해 개발과 보전에 대한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했다. 그리고 30여년 만에 국경지대에는 분단의 상흔이 말끔히 지워졌다.

난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통일 이후 국경지역의 토지가 과거 소유자에게 돌아가 국가의 관리 대상에서 벗어났고, 일부 토지는 기업에 매각돼 생태계 훼손의 위험에 빠졌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생태계 보전을 위해 국경 일대 사유지를 집중 매입해 국유화했고, 이 일대를 국가자연유산으로 지정해 주 정부에 귀속시키면서 2003년 국경지역의 보전, 활용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뤼네스반트는 21세기 들어 초국가적 환경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2002년 독일을 방문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그뤼네스반트를 남북으로 확장하는 유럽 그린벨트 운동을 제창했다. 그뤼네스반트는 스칸디나비아, 발트해, 중부유럽, 발칸 등 24개국을 통과하는 1만2500㎞로 확대됐다.

박은진 국립생태원 경영기획실장은 “그뤼네스반트가 보전·복원과 관광모델 사업을 조화롭게 추진해 지속가능한 발전 공간으로 상징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디엠제트의 보전과 활용 방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지방정부와 엔지오(비정부기구), 지역주민의 참여를 통해 디엠제트 보전과 개발의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