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일자
[기사 전문]
마크롱 "국제합의 명백 위반"
`1차세계대전 데자뷔` 위험고조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꿈꾸는 '21세기 술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100년 전 제국의 1차 세계대전 참전이라는 과오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리아부터 동지중해, 리비아까지 군사와 외교 영향력 확대를 노리면서 곳곳에서 서방 국가와 갈등을 키우고 있어서다.
터키 이웃 국가인 그리스 의회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과의 군사협력을 확대하는 새로운 군사협정을 비준했다. 이 협정에 따르면 미국과 합동훈련 시 미군이 그리스 라리사 등 3곳의 중부·북부 군사기지를 사용할 수 있다. 또 크레타섬 미국 해군 기지의 기간 시설과 건물 등을 개조·증축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그리스가 미국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터키 견제가 목적이다. 그리스와 터키는 최근 동지중해에서 에너지 개발 갈등이 심화됐다. 터키가 최근 키프로스 남쪽 해역에서 천연가스 시추에 나서자 키프로스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키프로스섬은 그리스계 주민이 대다수인 키프로스와 터키 정부와 친한 북키프로스로 분단돼 있다.
키프로스가 연안 대륙붕의 천연가스 자원 개발에 착수하자 터키는 북키프로스도 대륙붕 자원에 동등한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키프로스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시추선을 투입했다. 이에 키프로스는 지난달 터키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으며, 유럽연합(EU)은 터키의 가스 시추와 관련된 개인과 단체를 상대로 EU 여행 금지, 자산 동결 등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했다.
동지중해를 놓고 그리스·키프로스와 대립이 격화되자 터키는 동지중해의 배후를 노리게 됐다. 그곳이 바로 리비아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달 초 CNN 튀르크와 인터뷰하면서 "(터키군이) 현재 리비아로 움직이고 있다"며 리비아 파병을 공식화했다. BBC는 이를 두고 "터키는 리비아를 동지중해의 배후지이자 아프리카로 향하는 경제적 관문으로 인식한다"고 분석했다.
리비아는 2011년 '아랍의 봄' 민중봉기 여파로 무아마르 알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이후 2014년부터 서부를 장악한 리비아 통합정부(GNA)와 칼리파 하프타르 리비아국민군(LNA) 사령관의 동부 군벌 세력으로 양분됐다. GNA는 터키와 카타르 지지를 받고 있다.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러시아 등은 LNA 세력을 지지한다. 터키가 리비아 양대 세력 중 GNA와 손잡은 것은 터키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과 이념적으로도 동질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GNA는 이슬람주의를 지향하는 무슬림형제단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터키 AKP도 이슬람주의를 내세우는 보수 성향 정당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리비아 내전 개입을 두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제사회 합의에 대한 심각하고 명백한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또 이날 터키와 동지중해의 에너지 개발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는 그리스를 지원하기 위해 전투함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서방 국가들은 터키의 군사 팽창 행보를 경계하고 있다.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은 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몰락하기 전까지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에 걸쳐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이슬람 세계의 맹주를 자처했다. 아랍위클리는 "에르도안은 이미 사라진 오스만 제국의 커다란 옷을 입고 터키를 재설계하려는 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덕식 기자]
원문보기: https://www.mk.co.kr/news/world/view/2020/02/106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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