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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세계일보] [세계포럼] 진짜 실력은 위기 때 드러난다

Jacob, Kim 2020. 2. 8. 00:14








2020년 2월 5일자





[칼럼 전문]





우한발 신종 코로나 사태서 / 對中 저자세 외교 한계 절감 / 한반도 격랑 헤쳐가려면 / 이념 대신 현실에 발 디뎌야





골프 코스는 어려울수록 변별력이 크다. 선수들 기량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린 메이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원하는 곳으로 공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트러블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은 필수다. 이런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낭패를 보기 일쑤다. 우승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진짜 실력은 위기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법이다. 상황 대처 능력이 부족하면 화를 면하기 어렵다.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된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사태로 정부의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국가적 재난 앞에서 위기관리 능력은 낙제점이다. 신속한 초동 대처와 적절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정부가 외려 혼란을 부추긴다. 우왕좌왕하면서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할 중요한 타이밍을 놓치고는 뒷북 대책을 내놓기 급급하다. 관련 부처는 손발이 맞지 않고 환자 관리도 미숙하기 짝이 없다. 우한 거주 교민 격리시설 결정 과정에선 지역 갈등까지 불렀다.


우한 폐렴 사태는 정부의 외교 실력이 어느 수준인지도 보여줬다. 대중국 외교의 현주소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이후 “지나치게 중국 눈치를 본다”는 비난까지 감수하면서 대중 관계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굳이 청와대가 나서 ‘우한 폐렴’ 대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표기해 달라고 언론에 협조를 구했다. 중국인에 대한 관광 목적의 단기비자 발급을 중단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가 불과 몇시간 만에 ‘검토 예정’이라고 변경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 역시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우한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을 실어나를 전세기 출발을 느닷없이 지연시키고 비행기도 한 대로 줄이는 몽니를 부렸다. 외국인들이 앞다퉈 우한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국제사회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 교민 수송에 한때 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 부임한 지 닷새밖에 안 된 주한 중국대사가 이번 사태에 대한 한국 정부 조치와 관련해 “세계보건기구(WHO) 근거에 따르면 되지 않을까 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완곡한 표현을 썼지만 신임장 제정식도 하지 않은 대사가 기자회견을 자청해 공개적으로 주재국의 방역조치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부적절하다. 외교 결례로 여겨질 소지가 있다. 중국의 오만과 한국의 친중 저자세가 낳은 결과라고 봐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외교안보 환경은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아시아에서 미·중의 패권경쟁이 뜨거워지면서 한국은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안보·통상 압력도 강해질 것이다. 북한의 핵 능력 또한 날로 고도화하고 있다. 과거사로 꼬일 대로 꼬인 한·일 갈등은 여전히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난제들을 풀려면 고차원의 접근 방식과 해법이 필요하다.


중국과의 관계는 물론 중요하다. 중국은 우리 최대 교역국인 데다 북핵 문제에서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다. 중국에 호의를 보이고 정성을 다하면 알아줄 것이라는 생각인 모양이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지점에 있는 한국이 이런 식의 1차원적 접근에 매달리는 건 현명하지 못하다. 이런 접근법은 개인 관계에서도 위험하다. 국익이 우선시되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냉혹한 국제관계에서는 오죽하겠는가. 국가의 생존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골프 선수가 경기를 한 번 망친다고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저 속이 상할 뿐이다. 다음 경기에서 잘하면 된다. 정부의 외교는 차원이 다르다. 국가의 미래와 운명이 달려 있는 엄중한 사안이다. 한 번 잘못했다가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격랑의 한반도 정세를 헤쳐가려면 정부의 외교 실력으로는 어림없다.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념 대신 현실에 바탕을 둔 실사구시 외교가 필요하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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