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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뉴스와 시각-정의길] 안내 ‘유럽 틀어막은’ 트럼프의 초강수…실효성 논란

Jacob, Kim 2020. 3. 21. 00:56








2020년 3월 12일자





[기사 전문]





예측 벗어난 유럽발 미국 입국 금지

준비 없이 전격 발표한 듯 잇달아 수정

미 언론들 “혼란에 휩싸인 연설” 비판

악화되는 미-유럽 대서양 관계 변곡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급증하고 미국 안에서도 확산세를 보이자, ‘30일간 유럽발 미국 입국 금지’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유럽에 대한 미국인들의 ‘여행 재고’ 정도의 조처가 나올 것이라는 언론의 예상을 뛰어넘은 전례 없는 조처다. 유럽과 미국의 경제 및 일상, 대서양 동맹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효과는 물론이고, 전세계에 미칠 정치·사회적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가 11일 밤 9시(현지시각) 백악관 집무실에서 엄숙한 표정으로 읽은 10분 동안의 연설 내용은 전격적이고 파격적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트럼프는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별것이 아니라며 미국은 잘 대처하고 있다는 식으로 위험성을 평가절하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준비된 원고를 프롬프터로 보며 그대로 읽었음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그 뒤 핵심적인 내용을 몇차례 수정했다. 중대한 조처들을 발표하면서도 철저한 준비가 없었다는 뜻이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금지 조처들이 “엄청난 양의 교역과 화물뿐만 아니라 다양한 다른 사안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 사이의 교역도 중단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연설 뒤 당국자들은 금지 조처가 사람에게만 적용되고, 상품과 화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교정했다.


또한 연설에선 유럽에서 오는 ‘모든 사람’의 입국 금지라고 밝혔으나, 이후 미국 시민권자 및 영주권자는 입국하면 ‘의무 격리’될 수 있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료보험 가입자들이 내는 코로나19 “치료비”를 면제해줄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후 당국자들은 “치료비가 아니라 진단비”라고 수정했다. 영국이 입국 금지 대상에서 제외된 이유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미국 언론들이 “혼란에 휩싸인 연설”이라고 꼬집은 이유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초기에 강력한 조처를 취해 코로나19 발생률이 적었다며 이번 유럽발 외국인의 입국 제한 조처를 정당화했다. 그는 “유럽연합이 미국과 같은 예방 조처와 중국으로부터의 여행 금지를 하지 않았다”며 “그 결과 유럽으로부터의 여행자들에 의해 미국에서 대량으로 새롭게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외부로부터의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입을 차단하는 게 우선순위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그의 익숙한 전술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내 감염자가 1300명을 넘어서고,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 능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중국과 유럽으로 책임을 돌리려고 한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코로나19를 두고 “외국 바이러스”라고 칭해 이런 논란을 부추겼다.


또한 여행 금지나 국경 봉쇄는 세계화 시대에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방역에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 과학계의 일정한 합의다. <사이언스>에 발표된 최근 연구는 중국에서 오는 외국인에 대한 미국의 입국 금지 효과는 제한적이었다고 검증했다. 중국은 1월23일 우한 봉쇄령을 내렸는데, 이때쯤 바이러스는 이미 전국으로 퍼진 상태였다. 입국 금지령은 바이러스 확산을 단지 3~5일 늦추는 효과만 보였다고 이 연구는 밝혔다. 로런스 고스틴 조지타운대 교수(공중보건법)는 트럼프 대통령의 조처에 대해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안전도에서 미국과 마찬가지”라며 “코로나19는 이미 여기에 있고, 바이러스는 국경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유럽은 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지역이다. 미국 교통부에 따르면, 2018∼19 회계연도에 7240만명의 여객기 승객이 미국에서 유럽으로 갔다. 더 많은 여행객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정상회의 의장은 트위터를 통해 “경제적 혼란은 피해야만 한다”며 “유럽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한 필요한 모든 조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혀 미국의 조처에 불쾌감을 보였다.


여행 금지를 당한 유럽 쪽은 사전 상의는 물론이고 통보조차 못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맹의 가치나 효용을 폄하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해체 발언까지 마다하지 않던 트럼프로 인해 미국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보여온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독일이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프랑스에 입국 금지는 미-유럽 동맹관계의 돌이킬 수 없는 변곡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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