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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쇼핑몰 허가 차일피일… 지자체 눈치보기에 후보지 '흉물'로

Jacob, Kim 2017. 5. 8. 22:33






2017년 5월 8일자





[유통산업 '입지 규제' 영향]

유통업체 과잉 진출로부터 전통시장·소상공인 보호 명분… 지역 상인들 반대에 속수무책

일부 정치인 개입하며 쟁점화… 지자체끼리 갈등 빚기도
공사 끝내고도 주민 반대로 몇 년째 영업 못하는 경우도





[기사 전문]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역.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이어진 데다 주요 방송사까지 위치한 번화가지만, 2번 출구 앞 2만644㎡(약 6200평) 부지는 곳곳에 녹이 슨 공사장 가설 울타리에 가로막혀 있었다. 이 부지는 지난 2013년 4월 서울시가 롯데쇼핑에 '판매·상업 시설' 용도로 1972억원에 매각한 땅이다. 예정대로라면 올해 이곳엔 백화점과 업무 시설·대형 마트 등이 결합한 복합 쇼핑몰이 들어서야 했지만, 서울시가 4년째 쇼핑몰 건립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서 잡초만 무성한 황무지로 변했다. 쇼핑몰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상암동 일대 일부 상인이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라며 반발했고, 서울시는 건립 허가를 보류했다. 롯데는 지난달 서울시를 상대로 '도시계획 심의 미이행에 따른 부작위 위법 확인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인근‘롯데 복합쇼핑몰’예정지.

롯데는 2013년 토지 매입 후 공사를 시작해 올해 문을 열 계획이었으나, 서울시로부터 4년째 허가를 받지 못하며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로 변했다. /오종찬 기자




◇ "유통업체, 충분한 상생·협력안 부족" 對 "지역상인들 무리한 반대로 사업 차질"



유통 산업 '입지 규제'로 전국 곳곳의 쇼핑몰·대형 마트 출점 후보지에서 지역 상인과 유통업체 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13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매장 면적 3000㎡(약 900평) 이상인 대규모 점포를 개설하려는 유통업체는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상권영향평가서엔 대규모 점포 설립으로 주변 상권의 매출 감소가 어느 정도인지를 조사해 포함해야 하고, 지역협력계획서에는 유통업체가 지역 전통 시장·중소 상인들과의 상생을 위한 전통 시장 시설 개보수 지원이나 상인회 활동 지원 등의 협력계획안을 포함해야 한다. 유통업체의 과잉 진출로부터 전통 시장과 소상공인을 보호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유통업계는 "유통 시설이 들어서 주변 상권에 어느 수준 이상 영향을 끼치면 안 된다거나, 어느 수준 이상의 상생·협력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기준이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상암동 일대 상가 상인들은 "쇼핑몰 3개 동 중 1개 동을 비(非)판매 시설로 만들라" "하나로 연결된 지하층을 3개로 분리하라" 등의 조건을 내걸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이는 사실상 업체가 수용할 수 없는 과도한 요구"라고 주장했다.







반면 쇼핑몰 건립을 반대하는 상인 측은 "축구장 32개에 달하는 연면적의 쇼핑몰이 들어서면 주변 상권 피해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라며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자료를 토대로 봐도 롯데의 쇼핑몰이 들어서면 반경 5~10㎞ 이내 상권에서 50%대의 매출 감소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업계에선 서울시가 '롯데와 지역 상인들과의 상생 협의'를 인허가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고 있어 당분간 사업이 시작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 건물 완공하고도 주변 상권과 상생 협의 못 해 영업 못 하기도



공사를 끝내고도 주변 상인들과 상생 협의를 하지 못해 방치된 유통 시설도 있다. 롯데마트가 경기 양평군 종합터미널 근처에 짓고 있는 양평점은 85%가량 공사가 진행된 상태에서 4년째 공사를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2012년 7월 건축 허가를 받아 공사를 진행 중이었는데, 양평군이 "주변 전통 시장과의 상생 협의가 진척되지 않는다"며 2013년 7월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경북 포항 롯데마트 두호점 역시 2013년 건물을 완공하고도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유통 시설 건립이 지자체 간의 갈등으로 비화한 경우도 있다. 신세계는 지난해 경기도 부천 영상문화단지 내에 복합 쇼핑몰 사업권을 따냈다. 대규모 유통 시설이 부족하던 부천시는 신세계 복합 쇼핑몰 건립을 반겼지만, 도로를 경계로 인접한 인천시 부평구는 "부평구의 소상공인들을 어렵게 한다"며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


지역 상인뿐 아니라 정치권까지 관심을 가지며 유통 시설 인허가가 지역의 현안이 되기도 했다. 신세계는 광주광역시의 제안에 따라 지난해부터 광주에 특급 호텔을 포함한 복합 시설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현 광주신세계 부지 등 연면적 21만3500㎡(약 6만4600평)에 숙박·쇼핑·문화·여가 시설 등을 포함한 복합 시설을 건립한다는 계획이다. 지역 상인들이 광주 호텔 복합 시설 건립을 반대하고 나서자 지난 2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였던 이재명 성남시장은 "복합 시설이 들어서면 지역 상권이 초토화될 것"이라며 건립 반대 의견을 밝혔고,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경제민주화 관련 위원회)는 윤장현 광주 시장에게 공문을 보내 재검토를 촉구하기도 했다. 사실상 찬성 의견을 밝힌 국민의당에는 지역 상인회의 항의가 이어졌다.




◇ 대형 마트·쇼핑몰 '입점 규제' 효과 논란도 일어



유통 전문가들은 대형 마트·쇼핑몰이 '전통 시장 몰락'의 주범이고, 대형 마트를 규제하면 전통 시장이 살아난다는 전제 자체가 검증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소상공인진흥공단에 따르면 대형 마트에 대한 규제가 본격화된 2012년 전통 시장 일평균 매출액은 4755만원이었다. 그러나 2015년엔 4812만원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목표했던 전통 시장 살리기 효과가 충분히 발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편의점 시장은 2015년 전년 대비 25%, 지난해엔 19% 성장세를 보였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대형 마트를 규제하면 전통 시장으로 소비자들이 몰릴 것이라는 정치권의 생각과 달리 편의점·온라인 등의 매출이 늘며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며 "구체적인 연구 없이 규제만 쏟아지며 결국 피해는 소비자가 보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대형 마트에 대한 규제가 늘며 신규 출점이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가 발간한 '2017 유통산업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대형 마트의 매출 신장률은 전년 대비 0.9%에 그쳤다. 이마트와 홈플러스는 올해 신규 출점을 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유통 규제가 소비 심리 위축을 가져오고 이는 다시 경기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충령 기자 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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