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4일자
[칼럼 전문]
세 번의 감축 모두 일방적으로 결정
최적화 명분으로 재배치 가능성 커
트럼프 재선용으로 이용돼선 안 돼
‘타조 증후군(Ostrich Syndrome)’이란 게 있다. 위험이 닥치면 머리를 땅속에 처박는 타조의 습성에서 나온 용어다. 위기를 외면함으로써 안전하다고 착각하는 행태를 뜻한다.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대하는 당국의 태도가 딱 그 모양이다.
지난달 말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감축 관련 기사가 실려 큰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지난 3월 미 국방부가 주한미군 감축 방안을 백악관에 보고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우리 국방부 측은 “(이 문제가) 한·미 간에 논의된 적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감축 가능성은 없다는 투다. 과연 그럴까. 이 문제가 한·미 간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되는 사안이라면 맞는 얘기일 거다. 하지만 역사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미군을 뺀 건 닉슨·카터·부시 대통령 때 세 번이다. 한데 죄다 한국과의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됐다. 결정 과정에서 한국은 그림자도 찾기 힘들다. 그러니 한·미 간 이야기가 안 나왔다고 철군은 없을 거란 생각은 망상에 불과하다. 미 행정부가 철군을 앞두고 항상 한국군 전력 강화에 힘썼다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세 대통령 모두 미군 철군에 의한 한반도 안보 공백이 걱정됐던 모양이다. 지난달 28일 우주 발사체에 대한 고체연료 사용 제한을 미국이 풀어준 게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군 추가 감축을 위한 정지작업일 수 있다.
이뿐이 아니다. 주한미군 감축 조짐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난달 29일 공식 발표된 주독미군 3분의 1 감축, 그리고 같은 달 21일 공개된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의 발언도 주한미군 축소를 예고한다. 에스퍼 장관은 한 세미나에서 “한국에서 군대를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린 적은 없다”고 밝혔는데 이를 두고 한국 언론은 감축설을 부인하는 발언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 역시 오해다. 당시 그는 ‘미군의 감축이나 철수를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철수만 부인했다. 감축 가능성은 열어둔 셈이다. 게다가 에스퍼 장관은 이어 “미군의 최적화를 위해 모든 지역 사령부의 조정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맥락상 완전히 빼진 않겠지만, 재배치란 이름으로 주한미군 일부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와 관련해 특별한 관심을 끄는 것은 지난달 17일 발표된 미 육군전쟁대학 산하 전략문제연구소(SSI)의 보고서다. 이 리포트를 읽노라면 감축은 시간문제란 확신이 선다. 군사 전문가 및 현역 장교 15명이 2년간 달라붙어 만들었다는 이 보고서의 핵심은 두 가지다. 먼저 미국과 중국의 ‘초경쟁(hypercompetition)’은 갈수록 심해지는 데 비해 북한의 위협은 줄어들 거라는 것이다. 즉 지금은 미국의 군사력이 앞서지만, 순식간에 기술 격차가 사라지는 탓에 금세 중국이 따라잡는다는 얘기다. 반면에 북한의 경우 심각한 경제난 탓에 재래식 군사력은 갈수록 약해질 것으로 이 보고서는 예측한다. 그러니 동북아에 집중된 미군을 괌 등 남중국해 근처로 배치하는 게 마땅하다는 게 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이처럼 주한미군 감축이 내일 발표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임에도 당국은 수수방관한다. 실제로 정권 실세라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이렇게 밝혔다.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와 관련해 정부는 어떤 입장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결사적으로 막으려 했던 과거 정권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물론 주한미국 감축뿐 아니라 완전 철수도 언젠가 매듭지어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국익을 위해 언제, 어떻게 추진하는 게 좋은지는 다른 문제다. 명확한 건 우리 생명이 걸린 사안이기에 주한미군 철수는 북한의 전면적 비핵화와 맞바꿀 정도의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 트럼프의 재선용 깜짝쇼 정도로 쓰인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낭비다. 정부는 앞으로의 대북 협상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이런 참사는 막아야 한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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