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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리뷰] 독일 최고 명장 만슈타인의 회고록을 읽다 - 잃어버린 승리 [잘쓴글]

Jacob, Kim 2017. 2. 5. 19:31



[신작리뷰] 독일 최고 명장 만슈타인의 회고록을 읽다 - 잃어버린 승리 [잘쓴글]


원문글 주소:  http://blog.naver.com/atena02/



국내에서는 사막의 여우 롬멜에 비하여 ​인지도가 조금 떨어지지만, 제2차 세계대전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만슈타인 원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에리히 폰 만슈타인(Erich von Manstein, 1887~1973) 원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독일 지휘관들 중에서도 구데리안, 롬멜과 함께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유능한 장군이다. 그의 명성은 당대는 물론 후대 역사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독일 군부를 지배하는 프로이센의 명문 귀족 출신으로 전형적인 금숫갈 출신에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올라갔음에도, 보수적이고 구태의연했던 할더와 달리 만슈타인은 독창적이고 창의성이 넘쳤다. 그가 입안한 "낫질작전(Sichelschnitt)"은 1940년 5월 서부전역에서 영국-프랑스군의 허를 찔렀고 개전 일주일 만에 승패를 결정냈다.

만슈타인과 롬멜을 비교한다면 출신 배경과 성장 과정도 다르고 성격이나 지휘 스타일, 활약한 전장도 완전히 상반된다. 하지만 이점만큼은 공통적이다. 상황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니기보다는 스스로 끌고 가는 쪽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지휘관도 적에게 휘둘리기를 원치 않는다. 하지만 누구나 그것을 해낼 수는 없다. 그걸 실제로 해냈다는 것이 바로 두 사람의 천재성을 증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만슈타인은 주로 동부전선에서 활약하였고 바바롯사 작전부터 세바스토폴과 레닌그라드 포위전, 쿠르스크 전역 등 주요 작전에 빠짐없이 참여하였다. 특히 그의 역량을 보여준 전투는 스탈린그라드이다. 

1942년 11월 소련군 최고의 명장 주코프가 "우라누스 작전"을 발동하고 대대적인 반격으로 파울루스의 제6군을 포위하였다. 그동안 전쟁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믿었던 히틀러와 독일군 수뇌부로서는 그야말로 허를 찔린 상황이었다. 제6군은 독일 여러 야전군 중에서 최강의 전력이었지만 지나치게 적진 깊숙이 전진해 있는데다 병력은 수백km에 걸쳐서 흩어져 있었고 측방은 전투력이 형편없는 이탈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 동맹군이 맡고 있었다. 독소전쟁이 시작된 이래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는 독일 수뇌부가 소련군의 역량을 지나치게 얕본 결과였다.

히틀러는 ​만슈타인을 돈 집단군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겨울폭풍작전(Unnternehmen Wintergewitter)"을 발동시켜 제6군을 구출할 것을 지시하였다. 하지만 히틀러의 진짜 의중은 소련군의 포위망에서 제6군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소련군을 원래 있는 곳까지 밀어낸 다음 스탈린그라드를 완전히 점령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게 안된다면 차선책으로 패배를 제6군 하나로 끝내는 것이었다. 만슈타인은 이 임무를 훌륭하게 해냈다. 덕분에 주코프의 원래 목표는 독일 남부 집단군 전체를 한방에 박살내는 것이었지만 제6군의 괴멸과 스탈린그라드의 탈환에 만족해야 했다.

만슈타인이 비록 제6군을 구출하는데는 실패했지만 이것은 결코 그의 책임이 아니다. 처음부터 달성할 수 없는 목표였기 때문이다. 만슈타인은 전체는 구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일부 부대만이라도 구출할 수 있도록 소부대 단위로 분산 탈출시킬 것을 제안했지만 히틀러는 제6군이 무조건 위치를 고수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제6군 사령관인 파울루스 역시 맹목적이고 수동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꼼꼼하기만 할 뿐 야전 지휘관으로서 적극성이 결여된 그는 스탈린그라드 전역 내내 수동적으로 움직였고 소련군의 대규모 기습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소련군에게 포위된 일차적 책임은 그에게 있었지만 완전히 포위된 뒤에도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떠한지, 포위망 밖의 상황이 어떠한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총통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따를 뿐, 상황을 능동적으로 개선하거나 만슈타인과 연계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결국 총통에게 버림받은 것이 명확해지자 패닉 상태가 된 그는 절망하여 명령을 무시하고 소련군에게 투항하였고 反히틀러 선전에 앞장섰다. 이유가 어떻든 군인으로서는 가장 불명예스러운 모습이다.



스탈린그라드 전역 이후 만슈타인은 남부집단군 사령관을 맡았고 하르코프 탈환과 쿠르스크 전투, 드네프르 전역을 지휘하였다.


그러나 1943년 12월 시작된 소련군의 대규모 공세에 밀리게 된 그는 총통의 허락 없이 후퇴를 승인했다는 죄목으로 1944년 3월 30일 해임되었고 이후 어떠한 직책도 맡지 못하였다. 히틀러는 만슈타인의 천재성을 인정하면서도 "대규모 공세 작전이라면 그보다 더 적합한 인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런 작전을 할 일이 없다. 따라서 우리가 만슈타인을 필요로 할 일 또한 없다"라면서 요직에 임명하기를 거절하였다.


영-미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한 뒤 만슈타인은 한때 서부 집단군 사령관을 맡을 수도 있었으나 결국 그 자리는 클루게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클루게는 그로부터 얼마 뒤 일어난 "히틀러 암살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았고 결국 자살하였다. 만약 만슈타인이 실제로 서부집단군의 지휘를 맡았더라면 영-미 연합군의 싸움은 훨씬 힘겨웠으리라. 



전쟁이 끝난 뒤 만슈타인은 영국군에게 체포되어 뉘렌베르크 전범재판에 기소되었고 18년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영국의 저명한 군사 학자였던 리델 하트를 비롯하여 만슈타인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던 서방측 정치인, 군인, 학자들의 적극적인 구명 운동 덕분에 1953년 5월 7일 석방되었다. 이후 뮌헨 교외에서 은거하면서 독일 연방군의 재건에 관여하였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의 행적과 국방군의 미화에 앞장서서 모든 전쟁 범죄는 히틀러와 그의 측근들이 저지른 일이며 군인들은 정치와는 상관없이 오직 명령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식으로 변명하여 소위 "깨끗한 독일군 신화"를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1973년 6월 9일 만슈타인은 중풍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나이 85세였다. 독일 정부는 최고의 예우로서 국장으로 성대한 장례식을 치루어주었다.

롬멜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만슈타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는 자신이 군인으로서 최선을 다했을 뿐 히틀러를 결코 지지하지 않았으며 어떠한 전쟁 범죄에도 관여한 적이 없다고 변명하였다. 하지만 그의 변명이 상당부분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군인으로서의 명예 또한 실추되었다. 또한 이는 그동안 지나치게 미화된 것에 대한 반동 작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만슈타인이 당대 가장 뛰어난 군사적 역량을 갖춘 전략가였다는 것이다. 누구도 이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만슈타인 회고록인 <잃어버린 승리 : Verlorene Siege>이 얼마 전 국내에 출판되었다. 이 책이 1955년에 첫 출간되었으며 서방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연구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회고록 중 하나로 꼽힌다는 점에서 60년이 지난 지금에야 국내에 나왔다는 것은 지나치게 늦은 감이 있다. 이조차도 역자의 부단한 노력이 없었다면 결실이 없었을 것이다. 역자이신 정주용님은 직업적인 번역가는 아니며 바쁜 직장 생활과 병행하여 약 4년에 걸쳐서 번역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뒤늦게라도 출간된 것에 환호한다.

만슈타인은 이 책에서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1938년부터 폴란드 전역, 서부 전역, 동부 전선 등 자신이 직접 관여하였던 주요 전역을 다루면서 당시의 상황을 회고한다. 제2차 세계대전 내내 독일군 최고 수뇌부에 몸 담고 있었던 그의 회고는 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만슈타인에게 가장 중요한 작전이었던 스탈린그라드에 대한 비중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당시 제6군의 급박한 상황과 히틀러와 만슈타인의 대립, 구출 작전의 전개 등을 서술한다.


물론 그의 말은 일정 부분 걸러들어야 한다. 실수에 대한 변명, 오판의 책임은 전적으로 히틀러의 무능함과 아집에 있다는 식의 책임 회피, 국방군은 어떠한 전쟁 범죄에도 관여하지 않았고 자신은 이런 사실을 몰랐거나 허락하지 않았다는 주장 등. 이와 관련하여 중간 중간에 역자가 덧붙인 보충 설명도 훌륭한 읽을 거리이다. 만약 역자의 보충 설명이 없다면 일반 독자가 이 책을 읽기는 훨씬 어려울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사는 시중에 이미 하늘의 별만큼 많이 나와있으며 지금 기준에서 본다면 만슈타인 회고록은 솔직히 만슈타인이라는 양반이 썼다는 사실 이외에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을 수도 있다. 또한 많은 연구가들이 그의 회고록에 대한 논리적 허점과 자기 기만을 비판한다. 하지만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 책은 롬멜 전사록과 함께 독일 최고의 장군이 썼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여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밀덕들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