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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북미회담 취소 막전막후…"볼턴이 뒤엎었다"

Jacob, Kim 2018. 5. 26. 11:46






◆ 연합뉴스 TV 18년 5월 25일자 보도해설





2016년 말부터 지금까지는 히틀러의 잘못된 군사적 결정으로 인한 결과를 잘 참고하여서 그것과 '반대로' 만 결정을 하면 되었지만 이제부터는 '반대만이 아닌 전략 응용이 필요'하다는 의미의 보도입니다. 요약하면, '원 2차대전사' 라는 상식상의 이점을 더 이상은 누릴 수 없는 상황에 있다는 것이며 '적' 공세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당시와 같은 점 외 : 3 + 1 (쓰리 플러스 원)



첫째, 독일군의 기갑예비는 전력상으로 거의 증가하지 않은 반면에 소련군의 전력은 전쟁을 거치며 급속도로 증가했다는 점으로 즉, 독일군은 전투로 소모되거나 약화, 소멸된 사단들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기존 사단들에 충원되어야 할 보충 병력을 줄여서 편성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었으며


둘째, 독일군의 뛰어난 방어기술과 상황 변화에 맞게 여러 전술적 대응이 가능할 수 있는 유연한 지휘력, '적' 부대 보다 뛰어난 독일군의 군사적 자질 등이 계속된 위기에서도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셋째, 기갑, 항공기, 포병, 보병병력 등 독일군의 전쟁물자 생산, 보충능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 시기였다면 1944년 초의 만슈타인의 주장처럼 더 서쪽으로 후퇴하여 부대를 재편성한 후 공세 전력을 집결해 이듬해 봄에 반격해 섬멸하는 공세 이외엔 다른 전략상의 옵션이 없었는데 히틀러와 육군 사령부가 이 대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넷째, 사실 소련군의 남부집단군 전면 공세(1943.9)가 시작되는 순간 만슈타인의 경고대로 히틀러는 전쟁 중단이라는 급진적인(Radical) 선택을 감수해야 했으며 그 결정을 만일 늦추어야 했다면 제가 업로드한 쿠르스크 전투 '뒤집어보기'에서처럼 중앙군을 당시 방어선보다 더 안쪽으로 - 베레지나강 서쪽으로 - 후퇴시키는 것이라도 해야 했다는 점입니다.







2018년 5월 25일자





※ 관련 보도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시청해주시기 바랍니다.

http://www.yonhapnewstv.co.kr/MYH20180525016400038/?did=1825m




[스크립트 전문]





<앵커>




전 세계에 충격파를 던진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결정은 불과 12시간도 채 안되는 논의 과정을 거쳐 나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슈퍼매파'로 불리는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준삼 기자입니다.




<기자>




미국 NBCCNN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극소수 고위 관료만 불러모은 채 북미정상회담 취소 관련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건 지난 23일 밤이었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의 강경한 태도로 정상회담 회의론이 커지던 시점이었습니다.





특히 볼턴 보좌관이 그날 오후 10시쯤, 두시간 앞서 발표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비난성 담화 내용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날인 24일 아침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낼 회담취소 서한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이 서한은 공식발표 7분 전 북한에 전달됐습니다.




NBC 방송은 다수의 미국 관리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선수' 칠 것을 우려하며 먼저 회담을 취소하길 원했다며 결정이 너무 갑작스럽게 이뤄져 의회 지도자들과 주요 동맹국에 사전통고를 할 수 없었다고 보도했습니다.





회담 취소 결정을 이끌어낸 인물이 볼턴 보좌관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볼턴 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취소결정에 대한 확신을 심어줬고, 아무 것도 모르고 있던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미 결정된 사항을 전달받았다는 겁니다.





이번 결정이 트럼프 행정부 고위층 내부의 심각한 의견충돌을 노출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연합뉴스 이준삼입니다.






* 2018년 5월 25일자 연합뉴스TV 뉴스워치 보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