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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日 태평양전쟁 패망 이유는 원폭 아닌 소련 참전”

Jacob, Kim 2019. 3. 25. 00:18






2019년 3월 23일자





[기사 전문]




하세가와 쓰요시 지음/한승동 옮김/메디치미디어/3만3000원



종전의 설계자들 - 1945년 스탈린과 트루먼, 그리고 일본의 항복
하세가와 쓰요시 지음/한승동 옮김/메디치미디어/3만3000원






태평양전쟁의 종결은 원자폭탄이 아니라 ‘소련의 참전’이었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러시아사를 전공한 일본계 미국학자가 쓴 책으로, 일본쪽 시각이 많이 담겼다. 책에 따르면 당시 일본군부는 항복 이후 천황의 책임 면탈에 골몰했고, 소련은 남하해 한반도와 일본 홋카이도 점령에 골몰했다. 소련 참전의 빌미는 얄타회담이었고, 한반도 분단의 빌미가 되었다. 일본 항복 6개월 전인 1945년 2월 11일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은 소련 휴양지 얄타에서 만났다. 스탈린은 그 자리에서 대일 참전의 보상을 요구했고, 루스벨트는 단 15분 만에 그 조건을 승낙했다. 당시 루스벨트는 환자였고, 수십 시간 비행기를 타고 오는 여독으로 정상적인 정세 판단을 할 수 없었다는 것.

루스벨트의 관심은 오로지 미군의 희생을 줄이는 것이었고, 소련의 참전을 종용했다. 그러나 처칠은 공산주의를 확산시키려는 스탈린의 속셈에 반대했다. 얄타회담으로 소련은 만주 지배권과 한반도 진주, 쿠릴 열도 점령 등 전리품을 챙겼다. 1945년 4월 루스벨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부통령 트루먼이 제33대 대통령에 취임했고, 소련은 루스벨트가 약속한 이권을 챙겨 일본 항복 며칠 전에야 대일 선전포고를 했다.




이 책은 태평양전쟁의 종결이 일본 항복일인 1945년 8월 15일이 아니라 9월 5일이라고 주장한다. 전쟁은 소련의 쿠릴 열도 점령이 종료되는 9월 5일까지 계속됐다는 것이다. 2005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면서 미국 역사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일본을 항복하게 만든 것은 원폭이 아니라 소련의 태평양전쟁 참전이 결정적인 요소였다고 주장한다. 이는 원폭투하로 일본 항복을 이끌어낸 미국의 역사학계 입장을 뒤집는 내용이다. 일본은 소련군 진주로 쿠릴 열도 4개 섬을 소련에 빼앗겼다. 일본에서는 이를 북방 4도라고 하며, 지금도 4개 섬 반환을 국가적 정책 목표로 삼고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원문보기: http://www.segye.com/newsView/20190322584313?OutUrl=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