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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설진훈 칼럼] 경제학으로 풀어본 북핵

Jacob, Kim 2019. 3. 27. 14:55








美 트럼프 대통령 왈, 합리적 판단은 한계적으로(Marginally) 이뤄진다.





2019년 3월 26일자





[칼럼 전문]





실타래처럼 얽힌 북핵문제를 정치·외교적 관점에서 예측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경제학의 잣대로 냉철하게 분석해 보면 병증(病症)이 아니라 병인(病因)에 근접할 길이 조금은 보인다. 외교관 대신 심리학을 겸비한 행동주의 경제학자에게 협상을 맡기면 어쩌면 솔로몬왕의 지혜 같은 묘수를 내놓을지 모르겠다.

베트남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합의서 한 장 못 내고 딜이 깨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는 명저 에서 “합리적 판단은 한계적으로(Marginally)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거래가 성사되려면 한계효용과 한계비용이 일치하는 수준까지 상호 이해관계가 조금씩 좁혀져야 한다는 뜻이다. 자고나니 맘이 바뀌어서 뚝 떨어지는 딜(Deal)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3월 주택거래량이 10여 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급감한 것도 사고 팔겠다며 부르는 값 차이가 너무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호가(呼價)공백이 북핵 협상에서도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이 이번 베트남 회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은 물론 다른 지역에 숨겨놓은 핵시설에다 생화학 등 여타 대량살상무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일괄 폐기하는 것을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외교수사로 ‘빅딜’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All or Nothing’에 가까운 배짱 베팅이었다. 반면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 폐기를 내놓는 대신 종전협정과 금강산관광 재개 같은 작은 대가를 받는 ‘스몰딜’을 염두에 둔 듯하다. 실무협상 때 이미 호가공백이 크다는 점을 어느 정도는 인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대면에서 존 볼턴 보좌관이 올인 카드를 내밀었을 때 김 위원장 얼굴은 모르긴 해도 사색이 되지 않았을까.

정상회담이라는 특성상 이 정도로 사전조율에 실패했다면 협상테이블에 아예 앉지 않는 게 정상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사실상 판을 깼다고 볼 수 있는 트럼프 대통령조차 왜 베트남행을 마다하지 않았을까. 이는 행동경제학에 나오는 소위 ‘닻내림 효과(Anchor effect)’로 설명할 수 있다. 내가 비교기준점을 먼저 옮겨 선점하면 상대방이 한 발 양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협상이론이다. 1만원 이하 단품메뉴를 주로 팔던 횟집에서 3만원, 5만원, 7만원짜리 세트메뉴로 주력을 바꾸면 중간쯤인 5만원짜리가 잘 팔린다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최선희 북한 외무부 부상이 최근 기자회견에서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중단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것도 협상의 추를 유리하게 옮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사견임을 전제로 “김정은 위원장이 곧 성명을 내놓을지 모른다”고 강수를 던진 것도 한국 등 국제사회에 적극적인 중재를 호소하며 ‘앵커 이펙트’를 노린 듯하다.

그렇다면 비핵화 줄다리기의 경제학적 결론은 무엇일까. 이는 게임이론의 고전적 사례인 ‘죄수의 딜레마(Prisoner' s Dilemma)’로 추론해 볼수 있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와 UN 대북제재 전면해제를 맞바꿔 인민들이 쌀밥에 고깃국을 맘껏 먹을수 있도록 해주는 게 김 위원장으로서는 최선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역대 어느 라이벌도 해내지 못한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 낸다면 내년 대선 승리는 떼놓은 당상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경제학은 그럴 가능성이 지금으로선 제로에 가깝다고 말한다. 설령 두 지도자가 어렵게 ‘체제보장’이나 ‘100% 핵폐기’를 약속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꼭 실행에 옮길 것이라고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선 공범이 범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둘 다 무죄 석방되는 ‘윈윈 게임’이 된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불신의 장벽이 높다. 나만 입을 닫다가 10년형을 받는 게 두려워 결국 둘 다 자백해 5년형을 받는 차악을 선택한다. 지금 트럼프·김정은 두 지도자에게 차악은 무엇일까.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 선에서 현 상태를 유지하는 수준’ 정도가 아닐까.

이것도 교과서에선 양측 힘이 엇비슷할 때나 나오는 절충이다. 경제제재 탓에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 인민들의 살림살이가 고달파지겠지만 미국으로선 급할 게 없다. 결국 김 위원장 체면은 세워주되 ‘영변 핵 폐기+α’ 정도는 조속히 내놓도록 문재인 정부가 꾸준히 설득하는 게 그나마 ‘조정된 균형점’ 을 찾는 길 아닐까. 








[설진훈 매경LUXMEN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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