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북에 손내민 日, 무시한 北, 달래야할 南

2019년 2월 4일자

日 아베 총리의 北과 국교정상화 발언에 北 일언지하 묵살
남북미 3자 구도에서 中 참여 기정사실화..日까지 동참할 듯

[기사 전문]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우리와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이 북한에 대화를 요청했지만 북한의 입장은 한마디로 ‘무시’의 수준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지형이 새로운 전기를 맞는 가운데 우리 정부로서는 일본과의 갈등 속에서도 북·일을 달래야 하는 과제를 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 초계기 갈등을 벌인 일본은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국교 정상화를 언급하는 등 관계 개선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는 지난달 28일 일본 의회에서 가진 시정 연설을 통해 “북한과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를 지향하겠다”면서 공식적으로 국교정상화를 언급했다.

아베 총리의 이 같은 전향적 입장 변화는 지난해 연설에서 “핵과 미사일 도발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강경한 모습을 보인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그는 “북한의 핵, 미사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북한 국무위원장)과 직접 마주 보며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과단성 있게 행동하겠다”고까지 했다.

사실상 북핵 위기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 활용해온 아베 총리의 변화는 주목할 만 하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가시적 변화의 여지를 감지한 것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공조를 최우선시해온 일본 정권이 2019년 들어 달라진 북미 관계를 재빠르게 활용하려는 모습으로도 여겨진다.

반면 북한은 아베 총리의 러브콜을 사실상 묵살하다시피 했다. 조선중앙TV는 아베 총리의 화해 메시지에 대해 “일본 반동들이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을 대상으로 감행한 반인륜적 범죄자료들을 보면서 놈들의 죄악을 반드시 결손하고 말겠다”며 콧웃음을 쳤다. 일본의 납치 문제 거론에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해서 납치·강제연행한 조선 청장년의 수가 무려 840만여명”이라고 되받기도 했다.

사흘 뒤인 지난달 30일에도 북한은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최근에 더욱 노골화되는 일본의 군사대국화책동은 그에 내재되여있는 침략적인 성격으로 하여 주변나라들의 강한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면서 “해외팽창야망에 환장한 자들의 무분별한 책동이 어느 단계에 이르렀는가를 명백히 드러내보이고 있다”고 비난 수위를 높였다.

일본과 초계기 문제를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는 우리 정부의 입장도 난감한 상황이다. 한반도 문제를 푸는데 일본의 역할을 일정 부분 일정할 수밖에 없어서다. 이를 넘어 북한이 핵무장을 폐기하고 동북아에서 경제 발전의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일본의 역할은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은 앞서 지난 1970년 대에도 미국이 중국과 수교하기 앞서 먼저 중일 수교를 단행한 바 있다. 자국에 이익이 된다고 생각되면 무엇보다 실리를 앞에 세우는 모습을 보여왔다. 북한 비핵화 협상을 둘러싼 외교전에서 재팬 패싱을 당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오던 아베 총리의 전향적 입장 변화는 그 근거가 분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본은 지난 2002년에도 당시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북한에 경제개발 지원금을 약속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진행했던 선례가 있다.

일본이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만큼 우리 정부도 이전보다 발전된 남북 관계를 토대로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북미 기본 협상 구도에 중국이 동참할 뜻을 피력한 데 이어 일본마저 합류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동북아가 더욱더 고차원적 외교 방정식을 풀어야할 입장에 처한 셈이다.

김영환 (kyh1030@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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