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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소스] 독재·내전 파고들어 이익 본다… 푸틴의 '분쟁 비즈니스'

Jacob, Kim 2019. 4. 18. 01:25







2019년 4월 16일자





시리아·수단·베네수엘라 등 서구가 외면하는 나라와 협력
군사·외교적 지원 대가로 무기 수출·광산 채굴권 등 얻어





[기사 전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66) 대통령이 국제 제재를 받는 독재 정권이나 내전 중인 국가, 테러 집단 등의 취약한 입지를 파고들어 정치적·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사업 모델을 정립해가고 있다. 미 시사 주간지 타임은 이를 '깡패 국가 연합제국'으로, 블룸버그는 '글로벌 분쟁 비즈니스'로 표현했다.

푸틴 대통령은 아무도 만나주지 않는 독재자들과 잇따라 정상회담을 열어왔다. 시리아 내전으로 37만명을 죽게 한 바샤르 알아사드(53) 대통령이 2015년 첫 해외 방문지로 모스크바를 택한 이래 베네수엘라 국민을 기아로 몰고 간 니콜라스 마두로(56) 대통령, 수단의 30년 독재자 오마르 알 바시르(75) 전 대통령 등이 수차례씩 푸틴을 만나 '지도자 인증'을 받았다. 정권뿐만 아니다. 리비아를 다시 내전 위기로 몰고 가는 반군 수장 칼리파 하프타르(76), 심지어 러시아 스스로 테러 단체로 지정한 탈레반 수장도 '평화 협상'을 명목으로 모스크바를 오간다.








이들의 공통점은 폭력과 부패, 인권 탄압 등으로 서방 주도의 제재를 받아 외교·군사·경제적 활로가 막혔다는 점이다. 이때 손을 내민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와 전통적 군수 산업 등을 활용해 '생명 유지 장치'를 꽂아줬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내전 8년간 화학무기나 공습으로 민간인을 학살해도 유엔의 제재·규탄 결의안 십수건이 무산된 건 러시아 덕분이다.




푸틴의 독재 지원은 냉전 시절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 지원과는 양상이 다르다고 타임은 지적했다. 중동과 아프리카, 남미에서 러시아와 군사 협정을 맺은 23개 국가 중엔 사회주의나 반(反)서구를 표방한 경우도 있지만 사실상 이도 저도 아닌 탈법 정권이나 내전 중인 나라가 더 많다. 푸틴의 외교 브레인 안드레이 클리모프 상원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외국에 특정 이념을 심으려는 게 아니라 그저 우리 이익을 지키러 간다"고 말했다.

이런 정권을 지원하는 건 '고위험 고수익' 비즈니스다. 국제사회와 거래가 금지된 집단을 상대하는 만큼 리스크가 크지만 무기 수출이나 천연자원과 시장 확보에서 독점적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전 중인 수단·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은 러시아의 외교적 보호와 군사 지원의 대가로 금·다이아몬드 광산 채굴권, 무기 시장을 러시아가 독점하게 열어줬다. 베네수엘라와 리비아 핵심 유전도 러시아 국영 석유사 로스네프트 등에 헐값에 넘어갔다. 지난해 러시아의 시리아 등 각국 무기 수출 독점 계약의 수주 잔액은 500억달러를 돌파했다. 또 유엔의 러시아 제재 관련 안건엔 이런 아프리카·남미 국가들이 대거 손을 들어주곤 한다.

푸틴 대통령은 이런 국제 개입을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같은 민주주의 재건 원조나 중국식 대규모 자본 투자와 달리 러시아는 독재 엘리트 지원에 집중해 한 나라를 장악하는 구조"라고 했다. 중동 매체 알아라비야도 "푸틴이 러시아 국적을 가리고 글로벌 사기업을 내세우거나 한 나라 안에서도 정부군과 반군 양측을 동시에 은밀히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알 바시르 정권이 무너져도 수단의 지배층 '고객'에게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게 헤지(hedge·위험 회피)를 해놨다"고 했다.

대표적인 것이 러시아의 다국적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이다. 이 회사는 2015년부터 우크라이나·시리아·수단·베네수엘라에서 러시아 군사 기술·정보를 이용해 반정부 시위를 제압하고 야당 정치인과 언론인을 암살하거나 미국·유럽 등에서 인터넷 여론 조작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한데, 푸틴의 요리사 출신인 예프게니 프리고진(57)이 이끄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역시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푸틴이 이런 '분쟁 비즈니스'에 뛰어든 것은 국내에 돌파구가 없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CNBC와 블룸버그 등 경제 매체들은 러시아가 오랜 제재와 저유가, 외국의 투자와 기술 혁신 부족으로 경제난에 처하면서 집권 19년 차인 푸틴의 입지가 예전만 못하다고 했다.




푸틴이 최근 부쩍 독재 정권의 보루를 자처하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차원을 넘어선다는 해석도 있다. 애틀랜틱은 "푸틴은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가 2011년 반정부군과 국제연합군에 끌려나와 죽는 동영상을 끝없이 돌려본 뒤 반미 연합 전선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는 러시아·미 정보 관계자들의 말을 전했다.






[정시행 기자 polygon@chosun.com]






원문보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16/2019041600183.html?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