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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아침을 열며] 극일(克日)의 전제 - 정치 칼럼

Jacob, Kim 2019. 8. 16. 23:35








2019년 8월 6일자





[칼럼 전문]





한국은 민족국가를 수립해야 할 시기에 일제에 의해 침탈당했고, 자주적 통일국가를 건설해야 할 시기에 외세에 의해 분단을 맞았다. 이러한 현대사의 역사적 기원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이지만 그들에게 협조한 세력은 민족 내부에 있었다.

정부 수립 후 반민족행위처벌법 제정으로 반민특위가 활동을 시작했으나 반민법이 폐지될 때까지 친일 민족반역자의 처벌 성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반민특위 습격, 수사 방해 등 지속적인 이승만 정권의 친일파 처리 반대 입장은 반민특위 해체로 이어졌다. 특위는 약 700명에 달하는 친일 민족반역자를 취급했으나, 기소는 불과 290명 정도에 그쳤고 특별재판부의 판결을 받은 자는 불과 80명도 안 됐다. 이들 가운데 실형을 받은 자는 10명 정도에 불과했다.

2차대전 후 나치 협력범에 대한 재판이 진행된 유럽 상황을 돌아보면 프랑스의 경우 12만명 이상이 재판을 받아 6700여명이 사형선고를 받고 이 가운데 700명 이상에게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 외에 벨기에 5만여 명, 네덜란드 4만여 명, 노르웨이 2만명, 덴마크 1만4000여명 정도가 징역형 이상의 선고를 받았다. 우리와 여러 상황이 다르다 해도 우리의 친일 민족반역자에 대한 처리가 얼마나 미약했었는지 알 수 있다.

결국 해방 공간과 이승만 정부에서 친일파 처리는 실패로 돌아가고, 남한에 대한 효율적 통치만이 목표였던 미군정에 의해 권력 요직에 기용된 친일파는 사회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은 친일 신분을 세탁하기 위해 냉전에 편승하여 반공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확대ㆍ강화시켜 나갔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역사왜곡으로 1948년 제주 4ㆍ3 항쟁, 여순 민중 항쟁 등 한국현대사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정확한 맥락 등도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에 이어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한 경제 도발은 사실상의 안보ㆍ경제적 선전포고라 할 수 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의 성격, 한국경제에 타격을 입히겠다는 의도, 동북아 안보지형 변화 주도 등 여러 포석이 있음은 말 할 나위가 없지만, 이의 기저에는 식민지배라는 청산되지 않은 역사가 깔려 있다.

일본은 극우세력의 결집을 위해 외부의 적이 필요하다. 일본 입장에서 이러한 전략의 근본적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조짐을 부인할 수 없으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기존의 안보 질서가 바뀌고, 북미도 과거의 적대 관계에서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남북 협력이 답보 상태고,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도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지만 한반도 평화구축의 큰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일본에 한반도 평화와 문재인 정부는 불편한 존재다. 일본 내 극우세력 결집을 통한 평화헌법 개정으로 전범국가에서 전쟁국가로 탈바꿈하는 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과거에서 발원한 한일 갈등이 미래진행형인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을 극복하기 위하여는 이러한 일본의 속내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북한 미사일 도발을 빌미 삼아 9ㆍ19 군사합의 파기를 주장하고 있다. 한국당으로 상징되는 수구ᆞ냉전세력도 북한을 외부의 적으로 상정하여 안보 논리를 강조한다면, 신북풍을 선거에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정치공학 작동의 공간이 생긴다. 결국 극우세력의 집권은 한반도 안보 지형을 다시 냉전시대의 긴장관계로 되돌릴 수 있고, 북미 관계도 악화할 수 있다. 정확히 일본이 바라는 구도다. 미중러일과 북한에 둘러싸인 숙명적 안보ㆍ경제의 위기 지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일제 잔재와 냉전주의의 장막부터 걷어내야 한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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