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5일자
[칼럼 전문]
작금의 동북아시아는 신호등 없는 십자로에 차들이 뒤엉켜 붐비는 형국이다. 교통경찰까지 끼어들어 좌충우돌하는 모양새다. 말 그대로 혼돈 그 자체다. 그 속의 중-미 관계는 이제 본격적인 갈등과 충돌의 대결 국면에 들어섰다. 한-일 관계는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남북관계도 다시 갈등의 빗장을 풀고 있다. 나라마다 당장 발등의 불을 끄기에 급급해 전략이 변두리화하는 추세다.
미국이 주도하던 동북아 체스판은 흔들리고 있다. 태풍이 서서히 형성되는 느낌이다. 그 태풍이 찻잔 속에 머물지, 동북아를 휩쓸지,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작금의 동북아를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동북아의 혼란기와 흡사하다고 한다.
냉전 종식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동북아는 북핵을 매개로 새로운 질서 구축의 힘겨루기를 해왔다. 그리하여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과 2·13합의는 사상 처음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와 새로운 동북아 질서의 밑그림을 그렸다. 지난해부터는 사상 초유의 북-미 정상회담이 세차례나 열리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동북아는 질서가 아닌 혼돈에 빠져들어 가고 있다. 왜일까?
동북아는 근대사 이후 질서 변동기 때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으로 질서의 향방을 갈랐다. 냉전이 종식된 후의 질서 변동기에도 예외없이 한반도에서의 북핵 문제로 질서 구축을 도모해왔다. 북-미 간 갈등과 충돌로 북핵 문제는 눈덩이처럼 커졌고, 동북아에는 북핵 프레임이 블랙홀처럼 작동됐다. 그 북핵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연동돼 ‘제재 프레임’으로 동북아 여러 나라를 가둬 넣었다.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는 북핵에 인질로 잡혀 걸음을 멈췄다.
결과적으로 북핵 30년에 미국은 미-일 동맹, 한-미 동맹을 전례없이 강화하면서 ‘아시아 회귀 전략’과 ‘인도-태평양 전략’에 힘을 실었고 동북아 질서를 주도해왔다. 이를 기반으로 중국과 본격적인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투키디데스는 “전쟁이 불가피한 진짜 원인은 바로 아테네 세력의 성장과 그로 인한 스파르타의 공포”라고 했다. 작금의 중-미 관계에 비교하면 중국의 성장과 그에 대한 미국의 공포가 결국 중-미를 전쟁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북핵에 힘입어 ‘군사 대국화’와 ‘전쟁할 수 있는 나라’에 다가가고 있다. 한 세기 전 ‘동아시아 신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동아시아에 전쟁의 참화를 들씌웠던 일본이다. 미국 학자 에릭슨은 청일전쟁 후 열강의 간섭을 당했던 일본은 “긴박감, 초조감, 피해심리, 보복심리”로 “신흥대국 종합증”을 보여왔다고 했다. 그 일본이 오늘 다시 또 “긴박감”과 “초조감”을 보이고 있으며, “피해심리”와 “보복심리”로 주변의 신흥국가에 다가가고 있다. 아베가 작금의 중-일 관계를 1차 세계대전 전의 독일과 영국 관계에 비유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남북관계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취약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까지도 제로섬 관계인 남북관계는 당장 전쟁 변두리까지 갈 만큼 취약하다. 북한은 트럼프와만 손잡으면 만사형통이 될 것으로 보지만 남북관계가 깨지면 판이 다 깨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동북아의 혼돈은 정해진 순서일 것이다. 그 혼돈이 새로운 질서로 가는 길은 두가지뿐이다. 평화가 아니면 전쟁이다.
1차 세계대전 전 “각 나라 간의 경제 의존도가 상당히 높기에 유럽 문명국가 간에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이론이 있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그 이론을 무색하게 했다. 냉전이 종식된 후 경제 글로벌화와 지역경제 블록화의 흐름 속에 나라 간의 상호의존, 상호연계는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기에 전쟁을 하면 ‘양패구상’(서로 싸우다 양쪽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패해 상처를 입음)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작금의 중-미 무역전쟁이나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갈등은 ‘상호확증파괴’도 마다하지 않을 태세다. 거기에 날로 고양되는 민족주의가 합류하면 혼돈이 난을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1차 세계대전에 불을 붙인 것은 열강의 민족주의라는 설이 있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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