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3일자
[칼럼 전문]
지난 10월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남북한 축구 대결이 무관중, 무응원, 무중계, 무득점, 무승부의 5무 경기로 끝났다. 징벌로서 무관중 경기가 치러진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자발적으로 무관중 경기를 펼친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이번 사건으로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계층까지도 북한에 대해 큰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었다.
23일 자 노동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해 싹 들어내도록 하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 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정은이 실제로 어떤 표현을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정은의 말을 노동신문에 보도하기 위해서는 세부 표현 하나하나를 다시 보고해서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이라든지 '너절한'이라든지 '싹 들어내라' 등의 매우 공격적이고 거친 표현은 그냥 홧김에 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교하게 계산된 작심하고 한 이야기로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와 비교해서도 북한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정부다. 이러한 문재인 정부를 외교나 경제에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 무수히 많을 텐데 이용할 생각은 하지 않고 '너절한 남측 시설들' '오지랖 넓은 중재자' '삶은 소대가리' 등 상상을 넘어서는 거친 표현을 써 가면서 한국 정부를 비난하고 무관중 경기와 같은 몰상식한 행태를 보이면서 한국 정부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금강산 시찰에서 김정은은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등의 표현을 쓰면서 금강산 사업의 결정을 주도한 자기 아버지를 대놓고 비판했다. 김정은이 권력 기반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해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앞으로 자신만의 색깔과 자신만의 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단 한 번도 개혁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시장 확대, 시장 자유화, 자본 보호, 농업 개혁, 기업 자율화, 무역 확대, 인력 수출 확대, 하청 생산 확대, 투자 유치 확대, 기술제휴 확대 등 개혁개방 정책을 지난 8년 동안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 물론 대북 제재 여파로 지난 2, 3년 동안 무역이나 인력 수출, 투자유치 등이 크게 위축되긴 했지만 그건 김정은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김정은의 이러한 적극적 개혁개방 태도를 관찰한 일부 외부 인사들은 북한이 본격적인 개혁개방을 위해서는 핵무기도 포기할 것이고 남북 관계도 근본적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일면적인 생각이다. 필자는 김정은이 앞으로도 개혁개방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해 나갈 것으로 확신하지만 핵무기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남북 관계도 개선할 의지가 없다고 본다.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국제적으로 고립될 텐데 어떻게 개혁개방이 가능한가'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이야기는 북한의 경제 규모가 중국의 300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하는 이야기다. 북한은 중국 한 나라를 상대로 무역하고 인력 교류하고 투자 유치하고 기술 제휴해도 충분히 빨리 발전할 수 있다. 중국이 결코 북한을 버리기 어려운 지정학적 조건을 고려한다면 이런 전략은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을 못 믿고 끝까지 핵무기를 놓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경제, 정치, 복지, 문화, 법치 등 모든 분야에서 월등히 발전한 한국의 영향으로부터 북한 주민을 차단하기 위해 남북 긴장이 필요한 것이다. 개혁개방의 성공을 위해서는 체제 안정이 필수고 체제 안정을 위해서는 국방의 측면에서는 핵무기가, 정치의 측면에서는 남북 적대 관계가 필수 요소인 것이다.
얼핏 모순으로 보이는 개혁개방-핵무기-남북 적대 관계의 공존이 사실은 북한이 오랫동안 연구한 최적의 생존 기술인 셈이다. 따라서 남북 관계를 개선하거나 교류 협력을 확대하려는 모든 노력은 헛수고일 뿐만 아니라 김정은의 입장에서도 무척 성가신 일이다.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 신동아 인터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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