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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매경포럼] 미국 등을 떼밀어라, 쿠르드처럼 될 것이다

Jacob, Kim 2019. 10. 27. 01:41








2019년 10월 24일자





[칼럼 전문]





오래전 읽은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의 자서전 중 대략 이런 요지의 문구가 기억난다."베를린 봉쇄 기간 서베를린 시민들로 하여금 자유에 대한 의지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든 것은 밤새 하늘에서 들려오던 미군 수송기의 굉음이었다."

소련이 동독 안에 섬처럼 존재하던 서베를린을 봉쇄한 것은 1948년 6월이었다. 250만 서베를린 시민들에게 가야 할 생필품 보급로가 막혔다. 해리 트루먼 미국 행정부는 이 '자유 도시'를 지키기로 했다. 이듬해 5월까지 도로와 철로를 대신해 1000여 대의 수송기가 밤낮없이 물자를 날랐다. 전체 이륙 횟수 27만7264회. 하루 평균 860회, 2분에 1대 이상 수송기가 떴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대공수 작전에 질려버린 스탈린은 11개월 만에 봉쇄망을 풀어야 했다. 냉전의 시작이면서 '팍스 아메리카나'의 성격을 세상에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로마 이후 패권국은 여럿 존재했지만 약탈자가 아니라 자유 수호자로 등장한 패권국은 미국이 유일하다. 소련이 무너지자 미국식 자유주의에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헌사가 주어졌다. 그 후로도 미국은 "자유가 확대될수록 세계도, 미국도 더 안전해진다"는 신념으로 국제정치에 개입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시리아 철군 결정은 쿠르드족 수백만 명을 고립무원에 빠뜨렸다. 많은 지식인들이 이 결정을 2차 대전 후 미국이 견지해온 자유주의의 포기선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치 매코널 미국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1940년대 우리가 고립주의를 벗어던짐으로써 세계는 더 좋아졌다. 특히 미국에 좋았다"고 철군 결정을 비판했다.

이것을 트럼프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단순한 접근이다. 버락 오바마는 이라크 철군을 명령했다. 이것이 이슬람 테러집단 IS의 발호를 불러왔다. 인명이 수없이 죽어나갔지만 오바마는 무력 사용을 주저했다. 트럼프는 대선후보 때 "자유민주주의를 전파하는 일 따위는 그만둘 것"이라고 했다. 지금 그 약속을 이행하고 있다. 내년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이 흐름이 바뀔 것 같지 않다. 한때 미국인들은 '자유전사' 역할을 자신들의 '자명한 운명(manifest destiny)'으로 받아들였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영향력 있는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는 지난해 출간한 '거대한 착각'에서 냉전 이후 미국의 자유주의 세계전략이 참담한 실패였다고 주장했다. 아프가니스탄 이집트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등 여러 지역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전쟁과 군사 개입을 시도했지만 어느 한 곳에서도 자유주의와 인권, 민주주의는 신장되지 않았다. 미어샤이머는 "국제정치에서 자유주의는 민족주의와 생존투쟁을 본질로 하는 현실주의를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미국 외교가 가야 할 길로 자유주의적 헤게모니에 대한 야망을 폐기할 것을 권고했다. 트럼프가 이 길을 가고 있다.

한국은 미국에 시리아보다는 중요한 나라다. 미어샤이머는 미국이 집중해야 할 3개 핵심전략 지역으로 유럽과 (중동 전체가 아닌) 페르시아만, 그리고 동아시아를 꼽았다. 중국이 지금처럼 위협적인 한 미국은 동아시아를 떠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마지노선을 어디에 긋는가 하는 문제다. 한국이 포함될 것인가. 미국 입장에서 이것은 가성비의 문제다. 동맹이 약해지면 가성비는 떨어진다. 종북단체가 미국 대사관저 담을 넘고, 지소미아가 깨지는 일련의 흐름은 미국이 느낄 부담을 키우고 있다.

한미동맹이 존재했던 지난 반세기는 한민족 역사상 가장 번영하고 자유로웠던 시기다. 미국의 자유주의가 뿌린 씨앗 중 우리의 과실이 가장 컸다. 그런데 갈수록 짐을 부담스러워하는 미국을 자꾸 밖으로 떠밀고 있다. 어느 임계점에서 미국은 쿨하게 떠날 것이다. 누구든 쿠르드가 되기를 자청하는 민족이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노원명 논설위원]







원문보기: https://www.mk.co.kr/opinion/columnists/view/2019/10/866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