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0일자
[칼럼 전문]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의 영향력이 커지고 공산주의 체제가 확대되자 미국과 서방에선 소련을 조기에 붕괴시키는 방안(rollback)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자폭탄과 전략폭격기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핵공격이 대안으로 거론됐다. 시뮬레이션 결과 "미국이 공격하면 소련 전역에 연기만 자욱하고 모든 것이 방사능에 오염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일각에서 "고향이 방사능으로 쑥대밭이 된 소련이 미국에 수백 개 폭탄을 떨어뜨리고 자살을 시도할 경우 1100만명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더구나 소련이 1950년 3월 핵무기 보유국을 선언한 데 이어 4년 뒤 장거리 폭격기를 공개하고 1955년 수소폭탄 개발까지 성공하면서 소련 침공 계획은 폐기됐다.
이스라엘은 1973년 10월 유대인 명절인 '욤 키푸르(Yom Kippur·속죄의 날)'에 이집트와 시리아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아 국가 존망의 위기에 몰렸다. 종전보다 군사력이 강해지고 소련제 무기로 무장한 적 공격에 이스라엘은 개전 4일 만에 49대 전투기, 500대 이상 탱크를 잃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미국 도움으로 결국 승기를 잡았다.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막판에 군사원조를 승인한 것은 이스라엘이 아랍국가들과 전쟁에서 패할 경우 자체 핵무기를 동원해 아랍국가들과 공멸한다는 '삼손옵션(the Samson Option)'을 걱정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두 가지 사례가 주는 교훈은 적의 무력도발에 맞서려면 그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과 핵은 핵으로만 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동북아 외톨이'로 전락한 우리의 안보 상황은 그야말로 백척간두다. 지난해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시작된 북한 비핵화협상은 1년 넘게 원점을 맴돌면서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6일 강원 통천에서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실험에 성공한 뒤 "지난 3년간 간고한 투쟁을 벌여 핵전쟁 억제력을 손에 틀어쥐던 그 기세로 용진하자"고 했다. 핵 개발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비핵화 협상에서도 핵을 내놓지 않겠다는 배짱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북 간 비핵화 실무협상이 재개되더라도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한 뒤 우리를 핵무기로 위협하며 굴복을 요구할 경우이다. 일부에선 "미국이 본토의 전략핵무기로 북한에 대규모 응징보복을 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소위 미국의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능력까지 보유할 경우 미국이 자국 도시를 놔두고 서울부터 구해줄지는 미지수다. 역사에서 보듯 적의 핵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방법은 자체 핵무기 보유로 핵 균형을 이루는 것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핵무기 제조에 나서면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기술에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위반에 따른 국제적 고립과 경제적 제재도 만만찮다. 따라서 지금으로선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등의 주장처럼,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후 철수시킨 미국 전술핵을 한반도에 재배치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다. 전술핵은 전략핵무기와 달리 크기가 다양하고 표적에 따라 정교하게 사용할 수 있어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다. 북핵은 물론 재래식 기습공격이나 생화학공격에 대한 효과적인 억제도 가능하다. 북한에 핵포기를 압박하고 중국에도 북핵 해결에 나서도록 독려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미국의 동의와 중국·러시아 및 국내 반발이 변수다.
그러나 국가 자위권을 위해 국론을 모은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더구나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대가 최근 '한일 양국과의 핵공유(Nuclear sharing) 협정'을 제안한 것은 미국 역시 북핵 문제의 외교적 실패를 상정한 '플랜 B'를 준비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침략을 막을 수 있는 물리적 보호장치가 없다면 어떤 질서도 안전할 수 없다"고 했다. 더 이상 북한의 선의만 믿고 국민의 소중한 목숨을 맡길 수는 없다.
[박정철 논설위원]
원문보기: https://www.mk.co.kr/opinion/columnists/view/2019/08/642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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