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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세계와우리] 비슷했지만 달랐던 슈미트 총리와 文대통령 - 미소냉전사&

Jacob, Kim 2019. 11. 14. 22:11








2019년 10월 31일자





[칼럼 전문]





獨 슈미트도 진보 성향 정치인 / 소련 탄도미사일 동독 배치에 / 반대 무릅쓰고 ‘이중트랙’ 대응 / 文, 북핵 ‘원트랙’… 교훈 삼아야





독일의 5대 총리를 역임한 헬무트 슈미트는 문재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진보성향의 정치인이었다. 그가 속한 사회민주당(사민당) 역시 1950년대까지 마르크시즘 노선을 표방했었고, 진보정당의 국제조직 ‘진보동맹’에 가입해 있는 좌파성향의 정당이다. 문 대통령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북 관여정책인 햇볕정책을 계승한 것과 같이, 슈미트 총리도 전임자 빌리 브란트 총리의 대동독 관여정책인 동방정책을 유지·발전시켰다.


문 대통령이 남북 화해를 통해 동북아의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신념의 소유자라면, 슈미트 총리는 동서 화해를 통해 유럽의 평화를 구현해야 한다는 신념의 소유자였다. 이런 신념으로 동독뿐만 아니라 소련과의 정상회담도 개최했고, 동서 교류 확대와 동독의 인프라 구축에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북핵 위협의 고착화로 심각한 안보도전에 직면한 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슈미트 총리도 임기 초에 최악의 안보위기를 겪게 된다. 소련이 1976년 동독에 중거리탄도미사일 ‘SS-20’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핵탄두 3개를 탑재할 수 있는 SS-20의 배치로 서독뿐만 아니라 서유럽 전역이 소련의 핵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슈미트 총리가 안보위기에 대처한 방식은 문 대통령의 대응법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문 대통령이 북핵 위협에 대화만을 고집하는 ‘원 트랙’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과 달리 슈미트 총리는 소련과의 외교 트랙 외에도 미국의 중거리탄도미사일 ‘퍼싱 II’의 서독 배치 추진을 병행하는 ‘이중트랙’(double-track) 전략으로 대응했다. 슈미트 총리는 핵 없는 유럽이 최종목표이고, 이를 위해 소련과 대화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협상이 통하지 않고 소련이 끝내 핵미사일 철수를 거부한다면, 서독도 미국의 핵미사일 배치를 감행할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분명히 했다. 협상 기간도 4년으로 못 박았다. 4년에 걸친 협상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결국 퍼싱 II 서독 배치를 감행하게 된다.

이중트랙 전략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슈미트 총리는 적잖은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당시 미국은 지금 한국을 정조준한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과 같이, 서유럽을 겨냥한 소련의 중거리탄도미사일 배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소 데탕트 분위기 속에서 소련과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협상에 임하는 중이었고, 중거리탄도미사일 SS-20 배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제한하는 SALT를 위반하는 것도 아니었다. 서독 내 반핵 정서도 신경이 쓰였다. 내심 퍼싱 II 배치를 바라고 있었지만, 미국이 먼저 제안하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결국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사람은 슈미트 총리밖에 없었다. 하지만 퍼싱 II 배치는 슈미트 총리에게도 정치적으로 부담되는 결정이었다. 사민당의 지지층이 퍼싱 II 배치에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반핵·반전·평화의 기치하에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슈미트 총리 타도를 외쳐댔다. 다수의 사민당 의원 역시 슈미트 총리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일부는 탈당해 ‘녹색당’을 창당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특히 동방정책의 설계자이자 동업자였던 브란트 총리와 에곤 바르 의원의 비판은 뼈아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슈미트 총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정작 소련의 SS-20 동독 배치를 비난하지 않는 반대자들의 위선적 태도를 꾸짖으며 이중트랙 전략을 밀어붙였다.

퍼싱 II 배치 4년 후 미·소는 중거리핵전력폐기협정(INF)을 체결하고, 소련은 동독에서 미국은 서독에서 핵미사일을 철수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전략적 결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협상이었다. 그는 훗날 슈미트 총리에게 퍼싱 II 배치가 소련에 큰 위협이 됐음을 고백했다고 한다. 이중트랙 전략이 없었다면 과연 INF 체결이 가능했을까.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는 “이중트랙 전략이 없었으면 독일통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문 대통령이 진정 비핵·평화·통일을 원한다면 비슷했지만 달랐던 슈미트 총리로부터 역사적 교훈을 얻어야 한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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