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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진보’ 대신 ‘좌파’라 칭해야 옳다 /이재호 - 정치 칼럼

Jacob, Kim 2019. 11. 26. 22:45







2019년 11월 20일자





[칼럼 전문]





근대 정치사상의 실현은 1789년의 프랑스혁명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혁명의 구호는 ‘자유, 평등, 박애’였다. 자유는 정치적 사상적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평등은 신분제의 불평등을 타파하는 것이었다. 평등은 자유 없이는 성취될 수 없기에 자유와 평등은 불가분의 관계라 여겼다. 박애는 자유와 평등의 달성을 통한 국민적 단합의 이념이었다.


프랑스가 혁명 후 유혈사태와 혼란을 겪는 동안 영국 정치사는 순조롭고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영국 정당정치는 보수당과 자유당이 순차적으로 정권을 잡으면서 점진적으로 발전하였다. 기존 질서 유지와 개선에 비중을 둔 보수당에 반하여, 자유당은 선거권 확장, 곡물법 폐지 등 정치·경제적 자유를 강조했다. 당시 자유당은 ‘진보’로 보수당을 ‘보수’로 부른 것이 정치적으로 ‘보수’와 ‘진보’ 구별의 시작인 것이다. 영국 자유당 강령은 정치적 경제적 자유였다. 자유당은 당시 신분제에 의해 제한적이었던 선거권을 다수 국민으로 확장하고 수입하는 곡물의 관세를 철폐하는 등 정치적 경제적 자유의 확장에 주력하였다.

진보의 본래적 목표는 자유였다. 진보를 목적으로 했던 근대 계몽사상도 인류의 자유를 지향하고 있었다. 19세기 ‘칼 마르크스’가 공산주의 이론을 정립한 이후 평등이 진보의 목표가 됐다. 공산주의 정치체제가 성공했다면, 평등이 곧 진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철저하게 실패하였고 미래에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공산주의인 중국이나 북한 정권도 가장 불평등한 정권이 되어버렸다. ‘칼 마르크스’는 모두 잘사는 평등한 유토피아 사회를 공언했지만,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었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본질적으로 보수 우파 정당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민주당은 복지와 사회보장에 좀 더 관심을 가지며 인류의 인권을 공화당보다 더 중요시하는 정도이지 진보정당이나 좌파정당이라고 할 수 없다.

우파와 좌파라는 명칭은 프랑스혁명 당시 국민회의 좌석 배치에서 온건한 세력이 오른쪽에, 급진적 세력이 왼쪽에 앉은 것에서 유래한다. 정치사상 발상지인 서유럽은 정당을 우파 좌파로 분류하지만, 보수 진보로 분류하지 않는다. 진보라는 개념은 오히려 인권·자유에서 나왔기 때문이고 지향점이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이후 서유럽에서 좌파와 우파가 번갈아 집권했지만, 국가의 근본적 체제의 변화는 없었다. 좌파와 우파의 가장 큰 차이는 기간산업 국유화에 있었는데 이후 좌파도 국유화된 기업을 민영화했다. 경제 효율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우파가 점차 서유럽에서 우세하게 된 이유는 이러한 경제적 효율성 차이 때문이다. ‘칼 마르크스’는 헤겔철학을 거꾸로 해석해 모든 것이 물질이라는 유물사관을 정립했지만, 정작 헤겔은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향한 투쟁의 역사”라고 주장했다. 평등이 자유를 배제한다면, 인류 본성상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 정치 성향을 보수와 진보로 분류한다. 공자(孔子)는 이름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라 하였는데 과연 극좌파와 주사파를 진보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인가. 극좌파와 주사파는 진보가 아니라 정치적 반동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 보수의 정신적 가치가 ‘신의’에 있다면 진보의 정신적 가치는 ‘인권’에 있다. 특정한 계층의 인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인권과 생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진보가 나타난 이유였다. 한국적 진보의 한 가지 특징은 외교적 관점에 있다. 미국과 거리를 유지하고 중국과 가깝게 지내야 한다는 주장이 마치 진보 지식인의 징표인 것처럼 되어 있다. 아예 인권이라는 것이 없는 중국과 북한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이 진보라고 할 수 있는가. 비교적 진보적인 미국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중국과 북한 인권에 관심이 더 큰 것을 보더라도 인권은 진보의 가치이다. 인권을 도외시한 경제적 필요성은 진보의 가치와 상관이 없다.


정치적 성향을 분류할 때 보수, 진보보다는 우파, 좌파, 중도파로 분류하는 것이 현실에 맞다. 그것은 지향하는 정책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좌파란 용어에 거부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새는 좌우 두 날개로 난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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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91121.22030008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