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일자
"장보기 불편·환경과 무슨 상관" 비판에도 강행 의지
박스에 테이프 붙이면 재활용X…'친환경' 아니다
[기사 전문]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장바구니를 준비하지 못한 시민들이 구매한 물품을 종이상자에 담고 있다. 2019.1.1/뉴스1
(세종=뉴스1) 김혜지 기자 = 내년 1월부터 전국 주요 대형마트에서 자율포장대가 사리진다. 소비자들이 불만을 제기하고 있지만 정부는 업계와 체결한 자율협약의 시행시기를 늦출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2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8월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하나로마트 등 4개 대형마트와 체결한 '장바구니 사용 활성화 점포 운영 자발적 협약'은 예정대로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협약에 따르면 대형마트들은 자율포장대 운영을 중단한다. 협약서에 따르면 업체 자율로 종이상자와 포장용 테이프·끈 등을 치우며, 운영 중단 시기도 업체가 내부적으로 정할 수 있다. 강제 사항은 아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자율포장대 운영 중단은 정부와 업계가 3차례 회의를 거쳐 '자율' 협약으로 진행한 만큼 강제나 처벌이 없다. 시행시기 등과 관련해 정부가 굳이 협약 내용을 재검토할 필요가 없다"며 "내년부터 업체의 계획대로 시행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3사는 당장 1월1일부터 자율포장대 운영을 중단하기로 하고 지난달부터 운영 중단 계획을 알리는 홍보 활동을 전국 지점을 대상으로 벌이고 있다.
하나로마트는 농식품 등 부피가 많은 상품을 주로 다루는 탓에 자율포장대를 없애는 대신, 플라스틱 테이프를 종이 테이프로 바꾸는 등 포장재 재활용을 돕는 방향으로 협약을 우회 이행하기로 했다.
이번 장바구니 활성화 협약에는 포장재 폐기물 감축을 목표로 한 많은 내용이 포함됐으나, 유독 자율포장대 관련 부분이 논란이 되고 있다. 자율포장대 퇴출이 협약 취지와 어긋나고 소비자 불편을 초래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당초 자율포장대는 비닐봉지처럼 재활용 또는 분해가 어려운 포장재 대신 마트에서 버려지는 종이상자를 재활용하도록 한다는 '친환경'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환경부에 따르면 자율포장대는 오히려 친환경적이지 못한 부분이 있다. 일단 종이상자보다 다회용 장바구니가 폐기물 감축에 더 효과적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함께 쓰이는 포장용 테이프와 끈이 문제다.
종이상자에 플라스틱 테이프를 붙이면 재활용이 쉽지 않다. 테이프를 떼어내는 비용보다 소각하는 비용이 더 저렴하다. 일부 소비자는 상자를 포장하는 과정에서 테이프와 끈을 남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사용되는 포장용 테이프와 끈이 한 해에 3개 대형마트 기준 658t, 면적으로 따지면 상암구장(9126㎡) 약 857개를 덮을 분량이다. 반면 다회용 장바구니를 활용하면 한 번 쓰고 버리는 자원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정부의 설명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논리를 내놓는다. 장바구니를 들고 나오는 불편 탓에 직접 장보기보다 온라인 쇼핑으로 소비자가 몰린다면, 오히려 스티로폼과 테이프 등 재활용이 힘든 포장재 사용이 많아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게다가 지난 4월 대형마트 비닐봉투 제공까지 전면 금지된 터라 온라인 쇼핑의 이점이 크게 강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도 같은 아이러니를 호소하고 있다. 최근 유통업계에서는 안 그래도 오프라인 매출이 줄어 울상인데, 자율포장대를 없애면 온라인과 비대칭이 심해지면서 협약 취지에 위배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장바구니는 상자에 비해 부피가 작아 1~2주에 한 번 드물게 장을 보는 소비자의 경우 장바구니를 여럿 구비해야 하며, 과일이나 생선·육류 등 농식품은 짓눌릴 위험이 있어 기존의 종이상자가 더 적합하다.
그럼에도 환경부는 협약 추진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온라인 쇼핑에 수반되는 폐기물 문제는 택배업계 협약을 통해 별도로 풀어나갈 문제이며, 직접 장보기에 따르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유통업계가 대여체계 구축·도우미 배치 등 편리한 장바구니 사용체계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게 당초 이번 협약의 취지였다는 것이다.
또 장바구니 부피의 경우, 소용량은 물론 40~50ℓ 대용량까지 다양한 사이즈를 구매 또는 대여하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번 협약은 일종의 시범사업으로 정부가 법으로 강행하기 앞서 효과를 살펴보는 단계"라며 "자율포장대 퇴출에 따른 각종 소비자 불편과 종이상자를 주워 사는 저소득층에 대한 영향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해 최종 적용 여부를 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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