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3일자
[칼럼 전문]
● 신헌철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전면전 직전까지 치달았다가 가까스로 진정됐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1월 3일(현지시간) 미국이 이라크 바그다드를 방문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드론 폭탄으로 사살하면서 일촉즉발 위기가 불거졌다. 1957년생인 솔레이마니는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1979년 이란 혁명 당시 혁명수비대에 가담해 팔라비 왕조가 붕괴하는 것을 목도했고 이후 군에서 쾌속승진을 했다. 1990년대 말부터 해외 작전을 전담하는 최정예 부대로 알려진 쿠드스군 사령관을 맡았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의 총애를 받았으나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는 때로 갈등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내년 이란 대선 출마설이 제기될 정도로 군내 최고 엘리트였다. 철저한 반미주의자에다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이 주변국의 시아파 정권과 반군들을 집중 지원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당연히 미국에게는 ‘눈엣가시’같은 인물이었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미 군사당국은 이미 7개월 전부터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을 계획했고 그가 이라크를 방문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말 델타포스를 투입해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수장인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를 사살한 바 있다. 이미 한 차례 암살 작전에 성공한 경험이 테러집단이 아니라 정규군 사령관까지 제거에 나서는 자신감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동의 맹주를 자처하는 이란의 대응은 IS와는 달랐다. 이란은 닷새 뒤 솔레이마니가 사망한 시각인 새벽 1시30분에 이라크에 위치한 미군기지 2곳에 탄도미사일로 보복 공격을 했다. 다만 이란도 확전을 원치는 않았다. 미리 이라크 정부에 공격 계획을 통보했고 미국 측에도 추가 보복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제3국을 통해 알렸던 것으로 추후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튿날 기자회견에서 경제 제재를 강화하되 당장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확전을 피했다. 여기까지가 최근 상황이다. 그렇다면 시계를 뒤로 돌려 미국과 이란이 왜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살펴보자.
원래 이란은 1979년까지만 해도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였다.
1925년부터 1979년까지 이어졌던 이란의 팔라비 왕조는 1960년대부터 이른바 ‘백색혁명’을 통해 급속한 서구화를 추진했다. 이에 대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반발이 바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슬람 혁명이었다. 국왕과 황태자는 국외로 망명했고 이란의 입헌군주제는 폐지됐다. 이후 이란의 정치체제는 종교 지도자인 ‘라흐바르’가 국가 최고지도자를 맡는 사실상의 ‘신정 체제’가 됐다. 1989년 호메이니 사망 후 지금까지 2대 라흐바르는 알리 하메네이 그대로다. 최고지도자는 임기가 없지만 이란 대통령은 4년 중임제로 보통 8년씩 집권한다.
성직자 출신으로 2013년 집권한 하산 로하니 현 대통령은 곧바로 핵개발에 박차를 가한 대미 강경파다. 유화책을 택한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정권은 2015년 7월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독일 등과 공동으로 이란핵협상, 즉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 서명했다. 이란은 점진적으로 핵프로그램을 축소하고 대이란 경제 제재는 2025년 완전히 철회하는 합의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5월 JCPOA 탈퇴를 전격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검증을 피해 실질적 핵개발을 계속한다며 강화된 새 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는 나라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까지 경제 제재를 완전히 복원했다. 이란 중앙은행과 국가개발펀드 등을 테러지원집단으로 지정해 이란과 금융거래까지 제한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치에 따르면 이란의 실질 경제성장률은 2018년 -4.8%, 지난해 -9.5%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0%로 예상됐다. 이란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30%를 넘고 실업률은 15%를 넘어섰다.
경제 압박은 이란 레짐에 대한 국민 저항으로 발현되고 있다. 게다가 이란 군은 미군기지를 공격하던 날 테헤란 공항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격추해 176명이 사망했다. 이란 정부는 기계결함이라고 주장했다가 오인 사격으로 번복했다. 그러자 하메네이 퇴진을 주장하는 반정부 시위가 폭발했다. 이들을 친미 시위대로 규정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과의 가파른 대치 속에 악화된 경제 상황은 이란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 기자는 미국 워싱턴에서 우버를 이용하다 이란 출신 이민자 메디 씨를 만났다. 그는 30분간 이란 정권에 대한 격한 반감을 표출했다. 메디 씨는 “하메네이와 로하니는 극단적인 종교인들”이라며 “이들이 계속 정권을 유지하면 이란에는 미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자유를 억압하는 그들은 정권 유지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국민들을 볼모로 잡고 전쟁과 가난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전쟁을 치를 자신감이 없다고 확신한 듯하다. 경제 제재를 더 가하면 시민 혁명이 일어나든지 최소한 체제 붕괴 위기에 내몰린 이란 정권이 협상 테이블로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힘의 우위’를 기반으로 이란을 굴복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 성공에 이를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이미 40년 이상 반미 노선을 지켜온 이란 정권이 하루아침에 두 손을 들 가능성은 크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전략도 오락가락한다. 이란은 영토 왼쪽으로 지중해 연안까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으로 이어지는 ‘시아 초승달 지대(Shia Crescent)’를 통해 이스라엘을 간접적으로 견제하고 본토 공격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있다. 이란은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전폭 지지하고 레바논 반군인 헤즈볼라에도 자금을 대고 있다. 하지만 이란과 미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온 이라크는 이제 외국 군대는 모두 떠나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라크 철군을 계획했던 미국은 일단 파병 수준을 유지한다고 선언했으나 이미 시리아 철군을 결정한 트럼프 대통령은 ‘끝나지 않는 전쟁’에서 속속 발을 빼겠다는 의지가 여전하다. 만약 미국이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철수하면 이란의 역내 영향력 견제는 더 힘들어진다. 중동 내 미국의 우방인 이스라엘, 사우디, 요르단 등은 물론 호르무즈 해협 인접국들의 안보 불안도 커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미국은 에너지 자립국”이라며 “더 이상 중동 원유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제 유럽이 중동에 관여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고립주의 원칙을 내세워 중동에서 발을 빼는 순간 러시아가 발 빠르게 역내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다. 중동을 넘어 유럽까지 지정학적 불안감이 커질 수 있는 대목이다.
[신헌철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3호 (2020년 2월) 기사입니다]
원문보기: https://www.mk.co.kr/news/world/view/2020/02/10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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