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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희옥의 한반도평화워치] 한반도 정세 소강상태 장기화에 대비해야

Jacob, Kim 2020. 3. 6. 23:24








2020년 2월 7일자





[칼럼 전문]





조급한 외교 벗어나 한반도 문제 성찰할 수 있게 돼

중국 외교 딜레마와 남북 관계 돌파 시점 고려해

남북중 협력 방안의 대내외 설득, 국내 합의 힘쓰고

정교한 실행 프로그램과 부처 역할 분담 모색해야





신종 코로나 위기와 한반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중국 사회는 ‘공포의 전염’에 빠져있다. 한 달째 마스크와 방역복을 벗지 못하고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의 헌신과 ‘외출을 삼가고 마스크를 아껴 전선에 보내자’는 시민의식에도 불구하고 확진자와 사망자 규모가 빠르게 늘고 있다. 점차 초동대처가 늦었다는 탄식은 취약한 보건의료 시스템과 경직된 당 국가체제를 향하고 있다. 중국 경제도 크게 위축되었다. 지난해 어렵게 달성한 6.1% 경제 성장률을 올해에 달성하기는 역부족이고 이번 사건의 여파로 전년 대비 0.5%포인트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등장했다. 여기에 고질적인 지방정부 부채, 그림자 금융 등 ‘회색 코뿔소’(grey rhino) 현상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중국발 위기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단기적으로 중국 정부는 모든 역량을 민심 이반이라는 후유증 극복에 투입해 올해 국가전략의 핵심 목표인 중국판 중진국인 ‘전면적 샤오캉(小康) 사회 건설’에 집중하고 이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내년까지 정치적 동력으로 삼고자 할 것이다. 비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불만처럼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미국이 어떠한 실질적 지원도 하지 않고 신속하게 빠른 철수를 통해 중국의 불만을 사고 있으나, 미국이 중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외부 위협 인식을 고조시켜 안보화(securitization)하기보다는 낮은 자세로 미래를 도모하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1월 15일 중국이 미국과 제1차 무역협상에 서명하는 과정에서 새삼 경험한 미국 패권의 힘도 이러한 대외 인식과 한반도 정책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한반도 정세 출렁





신종 코로나로 인해 한반도 정세도 출렁이고 있다. 전염병 등 방역에 취약한 북한은 관광 교역에 의한 외화 부족 위기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국경을 닫았고 남북한의 유일한 통로였던 개성 연락 사무소도 폐쇄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 관계 개선의 새로운 전략으로 기획했던 이산가족의 북한 관광 프로그램의 추진 동력도 크게 떨어졌다. 또 신종 코로나 여파로 중국의 제조공장이 생산을 중단하면서 한국 경제에도 직격탄을 던지고 있고, 어렵게 만든 민간 교류의 회복 추세도 다시 위축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이 국면을 극적으로 벗어난다고 해도 한반도 정세의 소강상태는 좀 더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우선,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의 이중적 교착 국면이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당분간 비핵화 의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은 채 미국의 인식과 행동 변화를 요구해 왔고, 미국도 북·미 대화의 중요성을 확인하면서도 대통령 선거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나쁜 거래보다는 차라리 노딜(No deal)을 선호하는 등 팽팽한 줄다리기를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한국의 중재자 역할에 기대기보다는 중국과의 경제 협력 속에서 숨 쉴 공간을 찾으면서 미국과의 새로운 담판을 준비할 것이다. 따라서 남북 관계의 독자성을 회복해 북·미 관계를 추동하고자 하는 한국의 전략 구도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둘째, 북한과 중국의 전략 협력의 강화다. 2018년 북한이 전격적으로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밝히면서 다섯 차례의 북·중 정상회담이 열린 이후, 중국은 국제 제재의 사각지대에서 최대한의 대북한 지원을 제공하면서 양국은 전략 협력의 폭을 넓혀왔다. 북한은 신종 코로나 국면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은 ‘친혈육이 당한 피해로 여긴다’는 위로문과 지원금을 중국에 전달하는 등 높아진 사회주의 연대를 과시했다. 지난해 말 북한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겁박 카드를 접은 것도 중국의 설득이 주효했다. 이렇게 보면 한·중 관계를 통해 남북 관계의 교착을 타개하기에도 상당한 제약 요인이 있다.


셋째,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 전략 경쟁의 복잡성이다. 미·중 무역 마찰이 본격화되자 미국은 한·미·일 안보 협력을 공고히 하고 북한의 과도한 친중화를 막아 중국 견제에 역량을 집중하고자 했다. 중국도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대응해 북·중·러 사이의 전통적 북방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한·중의 전략적 관계를 강화해 이를 한·미동맹 연성화와 연계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분간 미·중 무역 마찰과 신종 코로나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과 날을 세우는 ‘냉전(冷戰:냉전)’보다는 ‘서늘한 전쟁(凉戰:량전)’을 선택하면서 공세적 대외 전략의 수위를 낮추고자 할 것이다.





남·북·중 협력 모델 유효성 점검 필요





한국 정부는 신종 코로나 위기가 본격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집권 후반기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해왔다. 이것은 북·미 관계 발전에 주력하는 동안 남북 관계의 추진 동력을 잃었던 것에 대한 성찰의 결과였고, 실제로 접경지역을 통한 관광 협력이라는 우회로를 제시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사실상 북·중 협력 공간을 활용한다는 전략적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실제로 지난해 말 중국 랴오닝성 당서기와 지린성 당서기가 연쇄적으로 북한을 방문해 북·중 정상의 합의를 관철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로 민생·농업·관광·문화·체육협력 등에 합의하기도 했다.


한편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지린성 정부가 한국의 기획재정부와 북방경제협력위원회와 함께 중국 장춘에 한·중 국제협력시범구 설치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도 국경 지역에서의 접점을 찾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남·북·중 협력에는 서로 다른 국가이익이 있고 시장 원리를 존중해야 하며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자본과 기술, 중국의 토지, 북한의 노동력을 결합하는 전통적인 남·북·중 협력 모델이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그리고 매년 중국 내 최하위 경제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동북 접경지역에 한국의 한계 기업을 유치하고 신규 투자를 설득하기도 쉽지 않다. 현실적으로 한반도 미래 비전을 고려한 대기업의 전략적 투자가 없는 한, 접경지역에서 산업클러스터를 구축하는 실험은 시행착오를 겪을 공산이 크다.





중국은 코로나 문제에 발목 잡혀





이러한 유동적인 한반도 상황에서 올해 상반기에 시진핑 국가주석이, 하반기에 리커창 총리의 한국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이를 계기로 양국은 사드 문제가 남긴 현안을 해결하는 한편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공동 역할과 현재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격상시키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다.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를 동시에 발전시키고자 하는 한국 정부의 확대 균형(expanded equilibrium)의 시금석이기도 하다. 신종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한국 정부가 중국 국민의 마음을 사는 대중국 공공외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이 국내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고, 중국의 독자 행동에 대한 미국의 반발이 있으며, 북한의 전략적 방향이 정리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한·중 협력을 통한 우회로 확보도 생각보다 간단치 않을 것이다.


그동안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방법론은 달랐지만, 남북 관계에 많은 공을 들였다. 한때는 한·미 관계에 연동된 종속구조 속에서 익숙한 길을 걸어왔다. 외교적 사고를 치지 않는 것이 목표가 될 정도로 한반도 평화를 제도화하는 의지 자체가 약했다. 다른 한편 남북 화해를 통해 한반도 현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역사와의 대화 의지에 경도된 채, 조급하게 외교정책을 실험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겪었다. 이런 점에서 한국적 방안의 대내외 설득력 확보, 폭넓은 국내적 합의, 정교한 실행 프로그램, 각 부처의 대담한 역할 분담 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역설적으로 중국발 신종 코로나 위기는 좀 더 긴 호흡을 가지고 한반도 문제를 성찰할 기회를 주고 있다.




키워드



회색 코뿔소


회색 코뿔소(grey rhino)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된 경고로 이미 알려진 위험 요인들이 빠르게 나타나지만 위험 신호를 무시하고 있다가 큰 위험에 빠진다는 뜻. 예측과 대비가 어려운 사태를 의미하는 블랙 스완(black swan)과 차이가 있다.


확대 균형(expanded equilibrium)

무역 분쟁으로 각국이 무역 장벽을 높여 교역을 줄이는 축소 균형에 대비되는 말로, 자유무역으로 서로가 윈-윈하는 상황을 뜻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전 세계가 확대 균형으로 나갈 것을 주창했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원문보기: https://news.joins.com/article/237000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