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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매일신문] [야고부] 종이 쪼가리

Jacob, Kim 2020. 6. 21. 16:11

 

 

 

 

 

2020년 6월 19일자

 

 

 

 

 

[칼럼 전문]

 

 

 

 

 

조약이든 합의든 국가 간의 약속은 지킬 뜻이 없거나 강제하려는 의지가 뒤따르지 않으면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1차 대전 종전 체제를 마련한 1919년 베르사유 조약과 영국 역사가 폴 존슨이 '깡패들의 협약'이라고 한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은 이를 잘 보여준다.

베르사유 조약의 목표는 독일이 또다시 침략할 경우를 대비한 안보 제공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치명적인 한계를 품고 있었다. 독일 군비의 철폐든, 전쟁 배상금 지불이든 독일의 실행 의지가 있어야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독일이 거부하면 연합국은 전쟁 재개 위협, 독일 영토 점령이나 봉쇄 등 실력 행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조약을 준수하겠다는 독일 정부의 서명뿐이었다. 독일은 지킬 수도 있고 이전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더욱이 연합국은 파멸적인 전쟁을 방금 끝낸 마당에 다시 전쟁을 할 생각이 없었다. 독일은 지키는 시늉만 했다.

불가침 조약을 맺은 스탈린과 히틀러의 꿍꿍이는 서로 달랐다. 독일과의 국경에 배치된 병력을 극동으로 이동 배치해 일본의 공격에 대비하는 한편 자본주의 진영의 피 튀기는 싸움을 느긋하게 구경하면서 피폐해진 자본주의 진영을 손쉽게 삼킨다는 게 스탈린의 구상이었다. 그 싸움의 최종 승자가 독일이든 영국이든 상관하지 않을 터였다. 반면 히틀러의 속셈은 서유럽을 정복할 때까지 독일 동쪽을 안전지대로 만들고, 그 뒤 소련을 쳐서 독일 식민지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히틀러와 스탈린 모두 애초부터 '조약'을 지킬 의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1941년 독일의 소련 침략은 조금 빨랐을 뿐 예정된 것이었다. 히틀러가 스탈린의 생각대로 서유럽을 정복한 만신창이가 됐다면 스탈린이 '선방'을 날렸을 것이다. [하단 책자 인용]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함으로써 '판문점 선언'도 박살 났다. 고래(古來)로 지킬 의지가 없는 조약이나 합의는 언제든 종이 쪼가리가 된다는 진실을 외면해서 초래한 처참한 결과다. 문재인 정권은 이 '선언'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왔다고 거짓 선전을 했다. 국민에게 사죄하고 정치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인내하겠다"고 한다. 정말로 '구제 불능'이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imaeil.com

 

 

 

 

 

원문보기: https://news.imaeil.com/InnerColumn/2020061818023176102

 

 

 

 

 

 

 

 

원문 블로그: blog.naver.com/africasyk/221786855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