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0일자
[칼럼 전문]
주한미군 재편이 이뤄진다고 북한에 대한 억지력이 약화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군의 신속 투사(投射) 능력이 향상되고 주한미군 기지가 거점 기지로 활용된다면 더욱 강력한 미국의 자산이 빠르게 투사될 수 있다. 관건은 한국의 결단이다. 중국에 대한 압박을 원치 않고, 미군 자산 전개가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꺼리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지속된다면 미 국방부의 주한미군 재편 방향은 매우 달라질 것이다. 선택의 순간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동맹국을 때리고 있다. 지난달 29일 주독미군 재조정이 발표된 직후 트럼프는 “돈을 안 내기 때문에 병력을 줄이는 것”이라면서 “돈을 내기 시작하면 재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는 지난 5일 ‘재선되면 최우선 의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동맹국이) 청구서에 돈을 내지 않고 있다”면서 방위비 분담 인상을 들었다. 트럼프의 발언은 2016년 대선에 이어 또다시 미국의 어려움을 동맹국에 돌리는 대선 전략의 일환이다.
이와 별개로 미 국방부는 전 세계 대비태세를 검토 중이다. 20년 전인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시도했던 군사력 변환에 기초한 ‘전 세계 국방태세 검토’를 소환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에 따라 기존 동맹정책이 흔들리는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 미군의 대비태세를 최적화하려고 시도한다. 첨예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미·중 갈등도 전진 배치된 미군 재편의 동력이 되고 있다.
아직 공식 문서로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미 정부 관계자의 발언과 성명 등을 통해 핵심 내용은 파악된다. 우선 미군 재배치와 재파병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시간과 비용, 인력을 절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모든 통합사령부를 대상으로 맡은 지역 임무 수행에 최적화됐는지를 확인한다. 특히 ‘역동적 전력 전개’ 개념을 도입해 순환배치를 늘려 모든 전구(戰區)에 투입할 수 있도록 전략적 유연성을 확장하려 한다. “전 세계에 상시 배치한 미군 수를 줄이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한다. 정리하면 특정 기지에 붙박이 형태로 대규모 병력을 주둔시키는 냉전형 배치를 지양하고 최대한 본토로 귀환시켜 필요 시 신속하게 투입하는 형태의 기동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온전히 성공한다면 ‘주한미군’ ‘주일미군’ ‘주독미군’ 등은 없어지고 ‘유동자산화’된 미군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운용된다. 부시 행정부 때 검토했던 것과 같은 목표다.
주독미군 재편은 이 검토를 최초로 시행한 것이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주독미군 재편을 트럼프의 비용 문제 제기와는 달리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해 군사력을 최적화하는 시도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조정되는 1만1900명의 주독미군 중 절반이 넘는 6400명을 본토로 귀환시키는 것이다. 에스퍼는 이를 신속 기동이 가능한 순환전력으로 재편하는 역동적 전략 전개를 시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재편은 냉전 후 변화된 유럽의 안보 환경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의 방위비 분담 연계는 국방부의 조정 계획을 승인하면서 다른 동맹국의 기여를 압박하기 위한 정치적 포석으로 이해된다.
미국의 검토는 주한미군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전시작전권이 전환되면 미국은 한반도 방어의 우선적 책임에서 벗어나므로 전략적 유연성을 확대할 것이다. 주한미군과 기지를 냉전형 붙박이로 활용하기보다는 역내 다양한 분쟁, 결국 대중국 견제용으로 사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올해 초 주한미군은 제외했으나 라이언 매카시 미 육군장관이 밝힌 재편의 기본 방향은 인도·태평양 내 미 육군을 다양한 분쟁 지역에 투입할 수 있는 신속대응군 성격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재편이 이뤄진다고 북한에 대한 억지력이 약화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군의 신속 투사(投射) 능력이 향상되고 주한미군 기지가 거점 기지로 활용된다면 더욱 강력한 미국의 자산이 빠르게 투사될 수 있다. 관건은 한국의 결단이다. 중국에 대한 압박을 원치 않고, 미군 자산 전개가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꺼리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지속된다면 미 국방부의 주한미군 재편 방향은 매우 달라질 것이다. 선택의 순간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
원문보기: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50938&code=11171395&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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