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1945/미소냉전-오스트리아 444

[경기일보] [안보의창] <11.4대선> 6·25전쟁 ‘인천상륙작전’ 결과와 의미

2020년 9월 15일자 [칼럼 전문] 1950년 9월 15일 06시30분에 실시한 인천상륙작전 계획과 결과 및 의미를 상기해본다. 이 해 6·25일 북한군의 남친 이후 낙동강 전선에서 위기를 넘긴 유엔군은 적을 일거에 포위 격멸할 목표하에 인천상륙작전을 진행하면서 대반격작전을 전개함으로써 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상륙작전계획은 1950년 7월 초 맥아더 장군이 그의 참모장 알몬드에게 “서울의 적 병참선 중심부를 타격하기 위한 상륙작전 계획을 고려하고 상륙지점을 연구하라”는 지시와 더불어 시작됐다. 맥아더 장군의 구상은 북한군의 전진이 계속되어 병참선이 신장될 것을 예견하고 아군을 적의 후방 깊숙이 침공시켜 병참선을 차단하고 낙동강 방어선에서 반격부대와 연결작전을 전개하여 적을 일격에 섬멸한다..

[인천일보] <11.4 대선> 인천상륙작전과 한미 동맹

2020년 9월 15일자 [칼럼 전문] 매년 9월 15일은 인천상륙작전의 기념일이다. 이날은 우리들에게는 특히 각별하다. 이날의 작전이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갔던 한국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돌려 놓는 계기가 됐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한반도 통일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도 희미해지는 지금 그때 작전의 의미를 되살려 보고 이날을 어떻게 기념해야 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상륙작전 목적은 적의 보급로 차단과 적지 깊숙한 곳에 공격을 위한 교두보 확보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상륙작전의 성공은 정확한 정보와 물량 규모 그리고 하늘의 운(運)에 달려 있다. 1차 세계대전 시 영국 연합군은 터키 갈리폴리에 상륙작전을 펼치지만 잘못된 정보로 전함 3척을 잃고 엉뚱한 곳에 상륙을 하게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