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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경문 감독, 일찌감치 레임덕 '예견된 경질'이었다

Jacob, Kim 2018. 6. 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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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4일자





[기사 전문]





지난 3일 마산 NC-삼성전을 앞두고 마산구장에는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며칠 전부터 선수단 사이에서는 NC 김경문 감독의 해임설이 돌았다. 만약 감독이 해임된다면 다음날 휴식일이 있는 일요일인 이날 결정될 것이라는 말도 함께 떠돌았다. 이날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김 감독 경질과 관련한 구체적인 증언이 올라왔다.

‘설’은 사실이 됐다. 경기 전 황순현 NC 대표이사가 유영준 단장에게 감독 대행을 맡으라고 통보했고 김경문 감독에게는 구단 고문 자리를 권유했다. 유 단장과 김 감독은 이를 받아들였다.




NC는 삼성에 7-8로 졌다. 이날 경기는 김 감독의 1700경기 출장 기념일이었다. 김 감독은 유 단장에게 “팀을 잘 추슬러달라”는 말을 하고 야구장을 떠났다. 구단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NC가 김 감독의 해임을 적어도 한 달 전부터 준비했을 것”이라며 “김 감독도 며칠 전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구단 고문직은 최소한의 예의 치레일 뿐”이라고 말했다.

예견된 수순이었다. 2016년 11월, 3년간 총액 20억원에 재계약을 한 김 감독은 계약 기간을 절반 넘게 남겨두고도 일찌감치 ‘레임덕’을 맞이했다. 프런트와 현장 양쪽에서 코너에 몰린 상황이었다.




시작은 구단이 큰 변화를 겪은 지난해 12월부터다. NC는 지난해 12월 이태일 대표이사가 전격 사임했고 모기업 NC소프트의 황순현 CECO(최고소통책임자)가 자리를 대신했다. 승부조작 사건 여파로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배석현 전 단장도 본부장으로 돌아왔다.

구단 살림을 새로 맡게 된 프런트는 긴축 경영을 택했다. 창단 직후 초기 투자 기간이 끝났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시작됐다. 김 감독은 비시즌 동안 전력 보강을 위해 대형 자유계약선수(FA) 선수의 영입을 원했지만 구단은 재정을 이유로 이 요구를 거절했다.




외국인 선수 영입 결정에서도 ‘레임덕’이 드러났다. 구단이 선택한 투수 왕웨이중과 로건 베렛은 김 감독이 그렸던 그림과 달랐다. 특히 베렛은 팔꿈치 이상이라는 변수를 안고 있어 당초 연봉 40만달러, 옵션 20만달러에 계약할 예정이었으나 메디컬 테스트 뒤 연봉 10만달러, 옵션70만 달러의 형태로 바꾸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전력 강화 요인이 많지 않았던 NC는 4월 초반 선두권을 지켰지만 이내 순위가 떨어졌다. 수년간 불펜을 지켜온 주축 선수들이 부진과 부상으로 쓰러졌다. 야수들도 줄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예년 같았으면 빈 자리를 대체할 선수들이 있었지만 올해는 달랐다. 주전과 백업의 격차가 어느 정도 벌어진 상태였고 프런트와의 관계에서 드러난 김 감독의 ‘레임덕’은 곧장 현장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김 감독의 선수단 장악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김 감독은 5월 초까지만해도 “한 번은 기회가 올 것” 승부를 걸어보려고 했다. “NC가 창단한 지 몇 년 안 된 팀인데 벌써부터 자화자찬하면 안 된다”고 말하며 프런트와 ‘기싸움’도 감당할 계획임을 밝히기도 했다. 김 감독은 “베렛을 쓰지 않겠다”는 뜻을 전하며 지난달 14일 그를 1군에서 제외했지만 구단은 대체 선수를 찾는 고민 대신 퓨처스리그에서 계속 경기를 치르게 했다.

그동안 NC 순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난 5월15일 롯데전에서 3-5로 패하면서 창단 처음으로 10위로 곤두박질친 이후 반등의 기회를 좀처럼 찾지 못했다. 더그아웃 분위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승패를 떠나 경기 내용이 좋지 않았다.




결국 프런트는 반등의 계기를 사령탑 교체에서 마련하기로 했다. 구단 측 관계자는 “모멘텀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황 대표이사도 “과감한 혁신 작업으로 팬의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했다. NC로서는 ‘새로운 정부’가 시작된 것이다.



어찌보면 정해진 수순이지만 뒷맛이 썩 개운치 못하다. 창단 뒤 빠르게 팀을 상위권으로 이끈 김 전 감독과의 마지막 이별이 씁쓸하게 끝났다. 유 감독 대행이 펼칠 야구는 방향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시즌이 절반 이상 남았는데도 팬들은 벌써 시즌을 포기한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상 2차대전사] 2018년 6월 5일 현재 소련전선(녹색)


방어선(청록) : 2017년 8월~11월까지

방어선(파랑) : 2017년 11월중엽~2018년 4월 초까지


방어선(/) : 2018년 4월초순~2018년 5월 말까지(군사충돌지역)  


방어선(녹색) : 2018년 6월14일경 총 퇴각 예정선 







■ 기사 요약(Summary)



1. 가상 2차대전사 - 2018년 5월까지 남부전선에서 격전 치른 독일군(종합)


2. 가상 2차대전사 - 만슈타인의 해임이 원 2차대전사(1944.3.30)와 달리 2개월 늦어졌다(2018.5.30, 18.6.1짜). 


3. 원 2차대전사 - 귀납적 사고를 통해 답을 찾을 수 있다. 남부집단군이 동우크라이나에서 소련군을 저지한다는 구상을 가능케 하려면 첫째, 쿠르스크 전투에서 남부지역 독일군이 적어도 '전술적 성과' 이상 확실히 달성해야 했다. 독일군은 쿠르스크에서 좀 더 모험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둘째, 쿠르스크 이후 나타난 소련군의 역습을 저지하기 위해 필요한 병력은 스탈린그라드 포위망에서 반드시 탈출해야만 했던 6군의 12개 사단에서 찾아야 했다. 


다만 최근까지 올려진 여러 관련 자료 등을 종합해볼 때 6군이 포위망 탈출에 성공했다 가정할 경우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병력은 10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위키피디아에서는 파울루스가 만슈타인의 돌파 요구를 받아들여 포위 돌파 작전을 개시했다 해도 6군은 일부만 살아서 나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적고 있다. / 180329_되돌아보는 스탈린그라드 퇴각전 참조 






<김하진 기자 hj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