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1945/독일-폴란드 분리선

◆[아시아경제] 일본, 5년만 40도 폭염…일주일새 12명 사망(주석+)

Jacob, Kim 2018. 7. 19. 08:34

 

 

 

 

가상 2차대전사(11) 소련군, 중앙 돌파 개시(계속)

 

 

 

2018년 7월 18일자

 

 

 

 

[기사 전문]

 

 

 

1.

 

 

[아시아경제 강희종 기자] 일본에서도 연일 폭염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18일 낮 최고 기온이 5년먄에 40도를 기록했다.

일본에서는 더위로 인해 열사병, 일사병 등 온열질환자가 크게 급증하며 일주일새 사망자가 12명으로 집계됐다. / 전사 12000명

 

 

 

동부장벽 사투 : 민스크 서쪽 후방 70km 앞

 

중앙군 전선은 7월 12일에 들어서야 소련군 공세가 민스크 서쪽 전선에서 한참 뒤로 밀려난 폴란드 동부-백러시아 국경지대가 인접한 곳(원 2차대전사에서는 비스툴라강 전선)에서 겨우 누그러지는데 성공했다. 이후 중앙군은 소련군이 형성한 교두보를 따라 격렬한 전투를 치르며 민스크 서쪽 후방 70km 앞에서 방어선을 부분적으로 회복하여 전선의 측면을 재구축했다.

 

하지만 소련군은 민스크 서쪽으로 여전히 교두보를 강고히 구축하고 있었다. 만약 서쪽에 따라 형성된 양편의 교두보가 통합된다면 독일군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었으나 중앙군은 병력 부족으로 이를완전히 봉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듯 중앙군이 전선을 따라 반격을 펼칠 무렵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소련군은 7월 15일에 백러시아 전역 3차 공세를 개시했다. 소련군 공세는 구축 중이었던 민스크 서쪽 후방 방어선을 관통하여 최종적으로는 폴란드 동부 연안과 동프러시아를 감제할 수 있는 지역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에 중앙군은 후방에서 재정비 중이었던 기갑병력들을 긴급히 집결시켜 격렬하게 반격하였으나 다시금 위험해지기 시작한 전선 상황을 회복하지는 못하였다.

 

민스크 후방 방어선을 둘러싸고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독일군은 7월 말까지 독일과 루마니아 전선 등지에서 반격 병력이 순차적으로 집결할 예정이었다. 중앙군은 병력 집결을 마치는 대로 곧장 두 단계로 반격을 진행하기로 다음과 같이 계획했다.

 

첫째, 폴란드 동부-백러시아 국경을 넘어서 가장 방어선 깊숙이 진격해 중앙군 전선 측면을 위협하고 있는 기갑군단 2개, 2개 군과 후선에 위치하며 이를 지원하는 1개 군, 그리고 3개 기갑여단으로 구성된 적 공격군을 포위하여 없애버려야 했다. 그에 앞서 선공으로 나설 수 개의 강력한 기갑사단들은 적 공격군에 측면이 아닌 정면을 타격하여 공격군을 직접 파괴하는 것이 필요했다. 적군은 측면 공격을 견딜 맷집과 강력한 화력을 갖추고 있는 고도로 기갑화된 부대들이었기 때문에 이런 공격이 선행되어야 했다. 이 공격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2018년형 소련군을 격파하는 것은 무위에 그칠 가능성이 컸다. 둘째, 그런 다음 후선에 있는 기갑군 1개와 후방 부대들을 포위 공격하여 최종적으로 중부지역 소련군의 공세 역량을 고갈시킬 계획이었다. 주1)  

 

 

주1) 자세한 내용은 1943-45 동부전선 독일군 공세 및 반격작전(한역 길잃은 어린양님) 참조.

 

 

 

이날 일본 지지통신에 따르면 일본 중서부 기후현은 13시34분 현재 40도를 기록했다.

일본 국내 기온이 40도를 웃돈 것은 2013년 8월12일 고치현이 41도를 기록한 이후 5년만이다.

이날 일본 기상청은 전국 주요 지역 온도가 35도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열사병에 대비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2.

 

 

일본 소방청에 따르면 연일 지속되는 폭염으로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일주일간 열사병으로 병원으로 응급 이송된 환자가 9956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주(2~8일)보다 3.7배 많아진 것이다. 또 전년 동기에 비해서는 2542명이 늘어난 것이다. 응급 이송된 환자중 사망자는 12명으로 올 여름 들어 처음으로 두자릿수를 기록했다.  / 부상,질병 손실 12646

 

 

 

동부장벽 사투 : 남부집단군 북익

 

남부전선에서는 드네프르강 방어선을 향해 중앙군과 보조를 맞추며 조금씩 퇴각전을 실시할 수 밖에 없었다. 위처럼 중부지역에서 전투가 절정에 이를 무렵, 남부전선에서 다시금 심각한 위기가 발생했다. 남부지역 소련군이 압도적인 전력으로 다시 한 번 남부집단군 북익에 대대적인 공격을 가한 것이었다(10일).

 

이 시기 남부지역 소련군은 연결된 전선을 따라 압도적인 전력을 집중하여 여러 차례의 정면 공격을 취하고 있었다. 공세 시기적으로는 1차 6월 20일~6월말까지, 2차 7월 5일~7월 9일까지, 3차 7월 10일~18일까지로 구분할 수 있다.

 

16일까지 앙전선군이 키예프 방면에서, 보로네시 전선군이 남부집단군 북익에서 방어선을 돌파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북익의 독일군을 한 때 포위하고 드네프르강으로 진격하여 남부전선 최대의 위기가 발생했다. 2017년 늦가을 이래 우려해오던 사태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 주1) 남부집단군은 또 다시 중앙군과 분리되어 키예프로 가는 길목에서 병력들이 둘로 나뉘어질 위기에 직면했다. 사령관 발터 모델 장군은 장군 특유의 방어전술로 전선에서 예비대를 급조하여 방어와 반격을 계속하였으나 소련군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에 처해 있었다. 남부집단군 북익은 포위를 피하기 위해 서쪽으로 후퇴해야만 했고(18일) 이제는 드네프르강 중류와 키예프가 위험해지게 되었다.

 

7월 23일, 남부집단군은 한달 간 벌어진 치열한 전투 끝에 전선을 재정비 하기 위해 드네프르강 방어선을 항하여 기술적으로 후퇴전을 벌여나가야했고 집단군은 급박한 중앙군 전선 상황을 고려하여 가급적 빠른 일짜에 후퇴를 마쳐야 했다(8월 10일까지). 집단군은 드네프르강에서 지난 1년전부터 구축되고 있었던 방어 진지들을 활용해 굳건히 방어선을 지켜내야 했다.  주2)

 

 

주1) 원 2차대전사 - 1943년 9월 14일에 있었던 남부지역 소련군 공세이다. 보로네시 전선군은 남부집단군 북익을 돌파하

      여 남서쪽으로, 중앙전선군은 키예프 방면에서 75km 부근까지 진격하였다(출처 : Scorched earth, 드네프르강으로

      의 후퇴).

 

주2) 원 2차대전사 - 1943년 9월 15일, 남부집단군은 도네츠강 전선에서 드네프르강 서안으로 철수를 개시했다. 집단군은

      1943년 9월 30일에 드네프르강 방어선을 따라 부대 재배치를 마치는데 성공했다. 당시 드네프르강 방어선은 1943년

      8월 12일부터 구축중이었고 부분적으로 밖에 완성되지 못한 상태였다. 소련군은 철수하는 독일군을 추격하면서 드

      네프르강을 따라 공세에 나설 여러 교두보들을 확보하였다.

 

      

 

 

응급 이송된 환자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46.1%를 기록, 특히 노약자들의 피해가 큰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호우 피해 지역인 서일본 오키야마 현에서도 353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다.

 

 

 

동부장벽 사투 : 남부집단군 남익

 

한편, 집단군 남익의 미우스강 전선에서도 소련군은 공세를 개시했다. 앞서 남부전선에서 6월 20일 개시된 소련군 공세는 집단군 북익에 이어 남익도 적군의 심각한 압박을 받게 되었으나 6월말까지 미우스강  전선에서 방어선을 유지하는 데는 성공했다. 

 

소련군 공세는 정확히 하르코프 북익에서 시작되어(5일) 바로 그 다음 날 중앙부 전선에서까지 공세가 이어졌다. 중앙군 전선에서 백러시아 전역 2차 공세가 개시된 후 적군은 남부, 남서 2개 전선군을 동원해 8군과 6군 전선의 연결부를 공격했다. 적군은 공세 개시 사흘만(8일)에 미우스강 전선을 넘어 후방에 위치한 거북방어선을 위협했다. 주1) 이런 상황인데도 2차 방어선에 가용할 수 있는 예비대가 거의 없었다. 예비대들은 집단군에게 보다 직접적인 위협이었던 하르코프 북익과 8군 지역*에서 소련군 돌파를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2) 6군은 이 공세 이전에 벌어진 전투에까지 휘하 병력들을 덜 위급한 전선에서 위험한 전선으로 이동시키며 돌파구가 확대되는 것을 막아왔지만 이마저도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다. 

 

주1) 원 2차대전사 - 1943년 9월 6일에 있었던 남부지역 소련군 공세이다. 거북방어선은 1943년 9월 9일에 콘스탄티노프

      카 전선에서 소련군에게 돌파되었다. 2차 공세는 예비대를 가용하여 돌파구를 틀어막았지만(11일) 돌파 당한 1차 방

      어선은 그대로 상실하고 말았다(출처 : Scorched earth, 드네프르강으로의 후퇴).

 

주2) 원 2차대전사 - 도네츠강 전선에 있었던 1기갑군이 수행한 전투로 재편성된 6군이 미우스 돌출부*에서 전투했다.

 

 

 

 

3.

 

 

기상 당국은 이번 폭염이 7월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 더위로 인해 건강과 생명을 잃는 사람의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7월 16일까지 중앙군은 바그라치온 작전으로 집단군 전력의 50%를 상실했다. 총 전력의 30%를 상실했다면 전선에서 빠져 후방에서 재편성에 들어가야 함을 의미하며, 4~50%를 상실했다면 잔존 병력으로 전선 방어 및 국지적 공세를 펼치는 것만 간신히 가능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60%를 상실했다면 부대 구성이 완전히 와해되어 기존 편제로 전투를 수행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중에서 약 10개 사단(9개 사단, 2개 여단)이 전멸은 피했으나 해체 직전의 상태가 되었다. 정리하면, 원 2차대전사와 달리 적군의 포위 공격으로 퇴각 또는 전투 중에 증발한 사단을 최소한 1/3까지는 줄일 수 있었으나 중앙군이 대 타격을 입은 것은 동일했다. 

 

 

 

 

전날엔 특히 야외학습을 하던 초등학생이 열사병에 걸려 숨져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아이치현 도요타시의 한 초등학교 1학년 남학생은 학교에서 1㎞ 떨어진 공원에 곤충채집을 하러 갔다가 의식을 잃어 병원에 옮겨졌으나 곧 숨졌다.

 

 

기사 요약(Summary) : 제4차 하르코프 공방전부터 노르망디 침공까지(Kharkov to Berlin)

 

10년을 1/10로 감자(국어로는 분해, 감자는 기업경영 용어)할 경우 산술적으로 유예된 패전은 1년이 된다. 아무리 못해도 1년 반은 전쟁 계속 할 수 있다는 거다.무리수 등 예상 밖의 변수가 튀어나오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1년에 6개월이 더해진다고 계산하면 맞다.
○ 가상 2차대전사에서 독일군의 최종적인 패전이 유예된 기간 : 2017년 8월 13~2018년 6월 22일 (10.5개월, 약 1년) ○ 원 2차대전사에서 독일군의 최종적인 패전이 지연된 기간 : 1943년 8월 3~1944년 6월 5일 (10개월, 약 1년)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원문보기: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8071814320523161